아이다움의 아름다움

 

이선영(미술평론)

  


개인전 29회 동안 만들어진 이상헌 작업의 궤적은 마치 노련한 목수가 나무와 대화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과 같다. 그는 작품 발표를 시작한 1992년 이래 러시아, 터키, 덴마크, 대만 등 해외에 많이 초대되어 나무와 인간이라는 소재의 보편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가 어릴 때부터 예술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상헌을 작가로 알린 나무 조각은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공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미대에 입학하고 2002년에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자연 친화적인 재료로 전환한 이후의 일이다. 가난과 떠돌이 같은 삶, 병과 상처는 나무의 옹이와 균열처럼 그의 조각 안에 새겨졌다. 삶의 고통은 작업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통과하며 치유로 전환되었고, 예술은 그에게 삶을 견디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이 되었다. 예술은 삶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에 거리를 두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자신 및 타자와 소통하고, 때로는 유통도 되면서 삶의 돌파구를 열어준다. 




Dreaming Tree_67×30×30cm_FRP,조명_2003



Stress_65×40×41cm_FRP,동봉_2003



꿈꾸는 남자_163x54x28cm_은행나무_2006



못을 박다_163x50x90cm_은행나무,느티나무_ 2018



이번 전시의 부제 [바람을 잡다]는 희망을 나타내는 ‘바램’이자 세상의 풍파를 말한다. 이상헌에게 제2의 자아가 된 어린 왕자는 스카프를 휘날리며 바람을 맞는다. 최근 작업에서 시도하고 있는 나무로 조각한 후 브론즈로 캐스팅하는 형식은 기존 나무 조각의 변주라고 할 수 있는데 나무의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진 색채는 계절과 감정, 서사의 상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물상은 목에 스카프를 맨 유명한 어린 왕자 이미지로부터 왔다. 이 또한 이상헌이 10년 넘게 지속해 온 소재로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유리하다. 어린 왕자가 불시착한 낯선 시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는 예술가의 타자적 조건과 겹친다. 작가는 자주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곤 한다. 작품 [너에게 별을 줄께]에 나타나 있듯이, 우주적 존재인 어린/어른 왕자가 별을 선물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작가는 어린 왕자의 결말 이후를 각색해서 어른이 된 왕자로 이어 간다. 그의 이전 작품 제목처럼 ‘어른 왕자’이다. 지구에 맞춰 어른이 된 왕자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 존재한다. 


[몽상가의 불확실한 내면 풍경] 시리즈처럼 목에 맨 스카프가 얼굴 부분까지 뒤덮으면서 보는 이에 따라 다소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순수와 낭만의 상징이던 스카프는 점차 얼굴까지 뒤덮으며 역설적으로 고난의 은유가 된다. 그것은 이상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자 현실 속에서 숨 막히는 존재의 초상이다. 이상헌은 이전 작업에서 생각과 느낌을 머리 부분과 가슴 부분에 빈 공간을 만든 후 서사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는 뇌 수술 이후 몸에 각인된 통증의 기억이며, 가슴은 못 박힘과 가위눌림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작품 [가위눌림]에서 ‘바닥에 쓰러진 인물의 형상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 채 긴장된 자세로 굳어 있으며, 비틀린 신체와 과장된 손과 발은 내면의 불안을 외부로 밀어낸 흔적처럼 드러난다’(작가 노트). [가위눌림]은 휴식이 아닌 불안정한 정지 상태로 상처와 불안을 표현한다. 상처와 불안은 어린 시절에서 어른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작품 [못을 박다]는 내가 부모에게 했을지 모를 철없는 행위를 부모가 된 후에 겪었던 체험이 반영된다. 




가위눌림,220x90x70cm,느티나무,은행나무,2018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_이상헌_Waiting_320x600x220cm_소나무,은행나무_2018



Stand against_303×187×160cm_외송_2021



너에게 별을 줄께_60×23×30cm_브론즈에 우레탄도장_2024



가까운 이에게 치명상을 안길 가슴에 대못을 박는 대목은 인물과 사물과 행위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재료에 새겨진 몸의 언어는 쉽게 이해되는 형태다. 병이 몸의 변화를 일으키듯 그의 작품은 어떤 징후를 표현한다. 인체의 주변에 등장하는 의자나 집은 몸의 연장선이다. 어린 왕자의 집은 견고하지 않다. 집은 뒤틀려 있고 앞뒤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그에게 ‘기억 속의 집은 안식처라기보다 늘 흔들리는 미완성의 공간에 가까웠다’(작가 노트) 집안 유일한 가구인 의자는 천장에 매달려 있어 앉을 수 없다. 만약 그의 작품을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놓는다면, 자리는 안정되지만, 그 안의 인간이 매달리게 된다. 자리와 인간의 불일치는 일치를 향한 움직임을 낳는다. 의자와 집은 어린 왕자와 더불어 자아의 상징적 자리지만 또한 부재와 불안의 공간이다. 이러한 서늘한 연출은 표현의 언어를 축약시키는 과정에서 나왔다. 불안하게 지탱하고 있는 4개의 뾰족한 기둥은 정주의 기반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예술가의 삶을 암시하며, 동시에 어린 왕자가 다시 별을 향해 떠날 로켓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이동 수단은 일종의 집이다. 최근의 첨단기술은 집조차도 이동성을 염두에 둔다. 인물의 금속성 표면이나 무중력 상태의 의자 같은 모습은 수세를 공세로,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할 수 있다. 작업이 치유이기에 그의 작품은 점차 밝아지는 중이다. 전시를 앞두고 아직 스케치로만 존재하는 작품에서 어린 왕자는 폭풍에 날아가는 듯한 의자를 한 손으로만 붙잡는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굳게 선 채 뻗은 손은 영웅적이다. 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위대한 신체 기관이다. 이상헌의 작품 목록에서 앞으로 내뻗은 손은 자주 등장한다. 특히 빈손일 때 빈 의자 같은 박탈감이 느껴진다. 대개 크기가 과장되어 있다. 몸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 규모는 유동적이어서 작은 인형 크기부터 최대 6미터가 되는 작품까지 존재한다. 신체 비율의 왜곡은 재현보다는 표현에 방점이 찍힌다. 조각은 말이 없는 예술이다, 수화처럼 이야기한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잡는 것, 그것은 조각가의 손이 해야 할 일 아닌가. 




바람이 분다-여름_80×29×23cm_브론즈에 우레탄도장_2024



몽상가의 불확실한 내면 풍경 Ⅲ_204×190×67cm_은행나무에 아크릴 채색_2024



몽상가의 불확실한 내면풍경Ⅴ_210×90×50cm_브론즈,나무에 아크릭채색_2024



조각가의 의자 1_220×220×120_나무,슈퍼미러_2025



그의 작품에 편재하는 의자는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넘어져 있는 의자에 대한 기억에서 왔다. 그에게 기다림과 부재의 상징인 의자는 대학 때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집과 의자의 고전적인 재료는 바로 나무라는 점, 이상헌이 나무의 언어를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점은 불안한 상황조차 매우 견고하게 표현하게 한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과 상황 여러 요소가 나타나지만, 통상적인 ‘설치미술’처럼 얼기설기 늘어놓지 않는다. 사방이 뚫려있음에도 기둥만은 견고한 그의 집은 ‘나의 불완전한 내면을 지탱하는 힘’(작가 노트)이다. 그의 어린 왕자는 관객에게 ‘순수함을 되찾아줄’ 임무를 맡는다. 어린/어른 왕자는 소위 말하는 ‘금쪽이’나 유아론에 빠진 어른이기보다는, 아이 같은 속성을 유지하는 어른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수단이 더욱 수월하고 흔해진 현대는 키덜트(kid+adult)가 문화적 현상이 됐다. 동물학자 클라이브 브롬홀의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은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대준다. 


사회생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요약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의 특성을 오래 유지하는 인간은 호기심과 협동성, 상상력을 통해 진화해 왔다. 이는 이상헌이 어린 왕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어른이 됐어도 잃지 않는 아이의 속성은 인류의 번성을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하는 예술에서 필수적이다. 아이의 무지는 현실에 대한 취약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앎을 위한 추동력이 된다. 미리 세상을 알아버리는 것, 그리고 코드화된 방식에 따라 대응하는 것, 이는 단지 체계의 재생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지배적 상징체계가 강요하는 일이다. 어느 때보다 ‘지적’인 시대, 인간은 삶을 얼마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삶과 예술에서 아이다움은 미숙함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이다. 이상헌의 어린 왕자는 그 가능성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모습이며, 그의 조각은 오늘도 바람을 붙잡으려는 손의 기록이다. 

  

출전; 대구아트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