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항 사이의 무게추 맞추기

  

이선영(미술평론가)

 


외곽선이 삐죽삐죽 제멋대로인 하지원의 작품은 겉보기와 달리 그 자신이 만든 단위 구조가 존재한다. 퍼즐이나 레고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거친 외곽선을 가진 단편들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2차원과 3차원에서 구성 또는 구축된다. 온전한 모습이 아닌, 즉 어디엔가 쓰고 남은 잔여물같은 상태는 그의 작품 형태와 색 모두에 해당된다. 크기가 제각각인 자투리 합판들을 줄지어 세워 한 색으로 칠해 단단한 응집체를 이룬 긴 막대형의 작품은 그의 작품에서 나머지들의 위상을 알려준다. 나머지는 나머지가 아닌 본체가 된다. 코드화될 수 없는 나머지들은 빈 부분이 있다. 하지원의 작품에서 편재하는 빈 곳은 보이지 않게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며, 관객의 참여가 가능해지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은 평면적이든 무대적이든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면서 생겨난 중층적 흔적들, 거친 외곽선 등의 방식은 유사하다.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 온 작업은 주로 2차원의 평면 작품을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이를 3차원 공간의 설치나 입체 작품으로 변환하는 방식’(이하 인용문은 작가노트)이다. 




세워놓고 기대서서



‘3차원이 아닌 2차원의 평면 안에서 이러한 일회성 행위들이 남긴 흔적 위에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려졌는지 또는 만들어졌는지 알기 힘든 그의 중층적 화면은 ‘캔버스에 마스킹 테이프를 찢거나 일정한 간격으로 붙이고 그 위에 모델링 페이스트, 미디움을 혼합해 바르고 말린 후 색을 입히고 테이프를 떼어내는’ 방법을 여러 번 반복해 하나의 질감이나 색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테이핑 작업이 포함된 평면 작품은 보통 5-6층, 최대 10층이 반복된 결과다. 해체와 구성이라는 양면성이 합체되듯이 규칙과 불규칙이 층층이 쌓인다. 그의 작품은 규칙과 불규칙의 사이에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색이 억제되는 대신에 겹겹의 층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색감과 촉감이 특징이다. 그림과 같은 사각형이 유지되는 경우 모노크롬 회화같은 느낌이다. 회화적이지만 붓보다는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한 거칠거칠한 표면은 얇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얼굴 피부 바로 아래에 깔린 수많은 근육이 만들어내는 표정처럼, 표현은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깔린 층들의 순간적인 연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타원형 평면은 사각 평면과 대비되어서 얼굴 실루엣이 떠오른다. 눈도 코도 입도 없지만, 관객의 시선 앞에 놓여진 둥근 형태는 오래된 시각적 관습상 얼굴의 위치에 놓인다. 전시장 조건에 따라 관객의 실루엣이 떨어질 타원형 형상은 거울이든 그림자이든 재현의 기원과 관련된다. 미발표지만 그는 작업 중 남은 자투리 목재로 액자를 만들어 그 안에 작은 타원형을 넣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액자(또는 그 변주인 거울이나 창)에 얼굴을 담는 것이다. 말레비치의 초기 추상과 후기의 이콘화의 관계처럼, 추상과 재현의 연결고리이다. 그 점은 하지원이 대조되는 두 항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는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타원형 평면 작품의 경우 [한밤의 롤러코스터]라는 전시 부제와 연관되어 심리적인 관계로도 보여진다. 




(참고작품) 공간 16m2, 가변사이즈, 나무에 혼합재료, 2018



벽에 배치된 8개의 얼굴 실루엣을 떠올리는 타원형 형태에는 롤러코스터가 작동하는 무대를 관전하는 또 다른 나, 즉 타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영업이 끝난 놀이공원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 꿈 속같은 롤러 코스터의 관객이라 할 만한 유령들이다. 이전의 화려한 색이 배제되고 검정, 백색, 레몬 등 세가지로 압축된 허연 모습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촛점이 맞춰지지 않은 동작이 허연 흔적을 남기듯이 말이다. 꿈에서 행위자와 관찰자가 같은 경우가 있다. 분신이든, 유령이든, 내 안의 타자든, 얼굴은 수많은 흔적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화장도 성형도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변수를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원의 작업 과정에 중요한 시간성은 연극적 설치뿐 아니라 평면 작업에도 일관된다. 이러한 작업의 시초는 청년 작가 시절 전시가 끝나면 되돌아와 쌓여 보관할 공간이 없던 그림에서 비롯됐다. 그는 뽀개서 없앨 수 밖에 없었던 그림의 판들을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힘든 노력의 산물을 부술 때의 심정, 그렇게 바닥을 친 상태에서 다시 세워지는 작품, 그 시지푸스 신화같은 무한 반복의 운명은 중년이 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바닥과 기둥을 지지대 삼아 증식되는 설치작품은 해체된 단편들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에서 해체(deconstruction)와 구축은 해체주의 철학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동전의 양면이다. 해체주의자들은 지엽 말단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에 해체가 내장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주장을 펼쳤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정확한 도면은 건물을 지을 때도 해체할 때도 필수적이다. 코드화되지 않은 하지원의 작업은 오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체득된 육감으로 진행된다. 필름을 거꾸로 돌리면 원래의 형태가 분명해 지지만, 그의 작품에서 ‘원상태’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대략의 계획은 있지만, 오직 현장 한가운데서 물리적 조형적 무게추 맞추기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이성보다는 상황에 기댄다. 



work24~25-01_캔버스에 혼합재료_91 x 61.5cm(30호) _2024~2025



부분



부수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과정들은 반복되는 트라우마와 치유로 이루어진 삶이 예술을 반영된다. 오래된 행성에 수많은 운석의 자국이 남아있듯 그의 작품에는 어디선가 떨어져나온 형태와 색이 새 몸체를 만든다. 여러 겹의 실행을 통해 최초의 시작점을 감추는 하지원의 작품에서 흔적은 중요하다. 해체주의에서 새롭게 의미화된 흔적(trace)은 물론, 보충(supplement), 차이에 의한 연기(différance), 보충적인 차이작용(differentiation), 반복변화성(iteration), 그리고 계열(series)적 사고도 발견된다. 마이클 라이언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에서 해체주의자에게 존재의 현존성이나 의식적 사고를 모두 무너뜨리는 이타성의 차이적 관계를 흔적이라고 해석한다. 그의 인용에 의하면 ‘흔적은 현존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이 전위되고 치환되고 자신을 넘어 참조 관계를 기지는 현존의 환영(simulacrum)’(데리다)이다. 때로 누더기 같은 모습을 한 하지원의 작품은 퇴행적으로 보이지만 엄연히 승화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의 부제인 [한밤의 롤러코스터]는 속도감 있게 장면이 변화하는 꿈을 연상시킨다. 깨어보면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또는 애초부터 해석 불가능하지만) 강렬한 느낌이 남는 꿈이 있다. [한밤의 롤러 코스터]는 이전의 화려한 색감이 빠지고 버려진 놀이공원같은 한적함으로 연출됐다. 폐허같은 놀이공원은 멜랑콜리하다. 롤러 코스터는 보통의 철도와 달리 상승과 하강의 굴곡면이 더 복잡하다. 철길을 특징짓는 안정된 원근법이 없고 시시각각 장면도 다르다. 길몽을 꾸는 자는 꿈 속에서 경이로워하며, 악몽을 꾸는 자는 스스로 깨어나려고 노력한다. 꿈은 현실의 파편들로 이루어진다.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비슷한 구성물(잔여)로 이루어지는 평행의 세계다. 그 점에서 꿈은 예술을 닮는다. 어떤 꿈을 재현했다는 것이 아니라 꿈의 메카니즘이 투사되어 있다. 꿈은 목적지를 향해 순차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올 출발점을 향해 압축적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과한다. 스릴감 넘치지만 ‘비생산적인’ 허무한 행위다. 한밤에 혼자 하는 놀이라면 더욱 썰렁하다. 




실현되지 못한 조각1



청년기를 지난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며, 점차 소통에 방점을 찍는다. 그의 이전 작업에 등장하는 방어적인 ‘성(Castle)과 섬(Island) 등의 이미지는 개방적인 문의 이미지와 공존했다. 요즘 작업에서는 성같은 고고한 나만의 세계보다 들고나는 통로가 더 중시된다. 롤러 코스터라는 구조는 통로 그자체의 모델일 것이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체험을 중시한 작품이 그것인데, 그의 설치작품이 평면을 뜯어서 만든 구조라면, 긴 합판에 어린이의 색종이 놀이처럼 색을 칠해 공간을 연출한 작품은 디자인적 요소가 강조되어 보다 산뜻하고 경쾌하다. 모터로 돌리는 팽이 소재 작품은 여러 겹의 층위가 눈에서 직접 섞이는 그의 작품의 기조를 깔고 있다. 일명 ‘오징어 합판’이라 불리는 재료는 2.2-4.5mm의 얇은 두께에 길이도 길고 탄력이 있어 롤러 코스터처럼 휘어지고 이어지는 공간을 구성하기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미술 재료가 아닌 이 합판은 작업과 병행하는 일로부터 영감받은 것이다. 작업의 지속성을 위한 일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같이 놀며 소통하는 예술의 균형추이기도 하다.  

 

출전; 수성아트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