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담지체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지원의 작품을 이루는 형태와 색은 산뜻한 일러스트 풍이지만, 그 배후에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깔려있다. 옛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했던 이야기의 공간을 작품으로 품는 게 핵심이다. 작가 스스로 몰입되는 것은 몰입적 작품의 필요조건이다. 그는 자신의 여태까지의 작품에 대해 ‘전해 들은 이야기가 기묘한 환상이 되는 회화’로 요약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미학 에세이]에서 화가들의 생생한 기억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모사했던 것은 지금의 그 모델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축적했던 이미지들이다. 축소모형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물에 대한 단순한 투영이 아니라 대상물에 대한 실제 체험을 구성한다.’(레비 스트로스) 이야기로 가득하던 할머니 방 장롱이 그림의 사각 공간으로 순차적으로 변주됐다. 할머니의 장롱을 열면 이야기가 나오는 듯한 상상은 장롱 형태 위의 여러 풍경으로 나타났다.

우화(羽化), 2026, 폼보드, 아크릴릭, 3mx3mx3m, 가변크기

관조(觀照)의 정원,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262x162cm
옛 이야기는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으며 산수의 능선이 출렁이는 환상적 풍경의 기원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롱의 일부분인 장석(裝錫)이 등장한다. 판과 판을 이어주는 기능적 사물은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은유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은유하는 제유법인 셈이다. 순간의 강렬함에 호소하는 시각성과 시간의 흐름이 요구되는 서사는 양립하기 힘들다.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에 서사를 넣기는 쉽지 않고, 작가가 접어 넣은 서사를 관객이 풀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레비스트로스는 같은 책에서 이에 관한 고전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디드로의 [백과사전] 항목에서 회화는 영원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상태를 포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불연속적인 그림들만 제공할 따름이다.’ 하지만 ‘표현에는 반드시 미결정 상태로 남아있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기에’(디드로) (그림의)불연속적 장면은 (연속적) 내용으로 읽을 수 있다.
동양화의 해법은 다르다. 거기에는 풍경 안 작은 인물의 궤적이 서사를 이끄는 관례가 있다. 이지원은 자기 작품을 ‘동양화의 점경인물(點景人物)을 오늘의 회화로 옮기는, 경계를 넘나드는 영원한 이방인의 여행’으로 풀이한다. 현실과 환상, 전통과 현대 등의 경계에 대한 관심은 최근 개인전 [경계 위에 피어난 내면의 산수](2026)에도 나타난다. 그에게 경계는 넘기 위해서 존재하지 그저 편리하게 그림과 이야기에 한정 짓기 위한 게 아니다. 미술의 정체성과 관련된 전사(前史)는 미술만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해 서사를 배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눈에 그 미학적 전모가 드러나고 파악돼야 하는 모더니즘의 논리에서 시간성을 전제하는 서사는 순수하지 않다고 간주됐다. 하지만 서사가 없는 형태와 색은 장식화될 위험이 있다. 장식 또한 모더니즘이 서사만큼이나 배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훌륭한 장식은 예술이지만 이미 장식이 미술의 범위를 넘어 자기만의 산업 시스템을 가지게 된 점이 문제다. 그렇다면 현대적 작품의 소통과 유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위)맺음(Maeteum), 2026, 한지에 아크릴릭, 22.7x15.8cm
(아래)맺음(Maeteum),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38x45.5cm

전시전경 - 흐르는 결, 2026, 가변크기
서사는 대안 중 하나이다. 상품 또한 성공을 위해선 서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붓질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칠해진 작품에서 서사의 흔적은 간접적으로 찾아진다. 그는 주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한다. 하지만 민화에 나오는 정물화 형식이나 기묘한 상상 풍경 안으로 들어간 작은 관찰자의 시점 등, 동양화 어법이 활용된다. 종이보다 캔버스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색에 대한 취향 때문이다. 그는 애니메이션같은 동시대 문화와도 호흡을 맞춘다. 두 구역으로 나뉜 이번 전시장에 방 하나를 차지하는 것은 장석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군이다. 오래된 장롱은 그 장식물(장석)만 남아 하얀 캔버스 위에 줄을 맞춰 배치된다. 옛 물건은 본래 도상해석학으로 규정될 수도 있는 엄밀한 상징이 내재해 있지만, 작가는 의미의 연쇄와 무관한 중성적 배열을 통해 그 기표만을 선택한다. 중심/주변의 경계가 없는 구성은 확장성을 가진다.
평면적 형태를 가지는 물건은 캔버스에서건 모빌에서건 차원의 이동이 쉽다. 우드락에 색을 입혀 금속같은 느낌을 주는 3차원상의 장석은 그림과 달리 뒷모양도 볼 수 있다. 장석은 장롱에 붙어있던 것처럼 캔버스에 평행하게 재현된다. 대상을 닮은 기호들은 기능과의 연결을 끊고 자율화된다. 전통적 장석은 그에 관련된 무형문화재가 있을 정도로 그 자체가 중요한 유물이며, 부귀영화나 자손번창같은 기복(祈福)적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한 가치는 외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확실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도 설득력 있다. 지상에서의 안위를 바라는 심정은 관념적 초월보다 나쁘지 않다. 상상은 현실로부터 생겨나고 다시 현실에 영향을 준다. 하얀 석고상 머리에서 꽃이 피어오르는 이전의 작품처럼 현실과 상상은 수시로 경계를 넘나든다. 일상이 굳어졌다고 생각될 때 그림이라는 환상적 맥락 속에 놓인 동식물은 살아있는 삶을 은유한다. 상상은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참고) 기억의 결,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x91cm

(참고) 기억의 결,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31.8x41cm
캐스린 흄은 [환상과 미메시스]에서 환상은 치환과 고정된 한계의 극복, 언어 조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환상은 ‘꿈같은 과대망상이나 응축의 상태를 허용한다. 반면 과학적 언어(확대하면 리얼리즘의 언어)는 이러한 효과가 없다. 그 전체 기반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하나의 지시대상만을 나타내는 전문용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명백한 것을 지향한다. 반면에 환상은 풍부함을 지향한다.’ 이번 전시에서 장석에서 온 형태들은 100호 캔버스 두 개에 빼곡히 담겨있음과 동시에, 그림자를 가지며 공기의 흐름에 움직이는 모빌로 만들어진다. 할머니 방 장롱의 장석이 그림으로, 다시 입체로 이어지면서 시공간적으로 저 멀리 있던 것이 손에 잡힐 듯한 형식으로 점차 구체화되는 형국이다. 이야기는 민화나 채색화 같은 현대적 감성과 연결되는 전통을 활용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다른 방에는 댕기로부터 시작된 스카프 모양의 평면 작품이 걸려있다.
스카프를 선물 상자 안에 넣은 것처럼, 나무 프레임이 둘러쳐 있는 캔버스는 무엇인가를 담는 그림의 역할이 있다. 이지원에게 담기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할머니의 방, 그 안의 장롱, 장롱에 가득 담겨 있다고 상상됐던 이야기가 화가가 된 이후 계속 그림에 담겨지는 것이다. 그의 스카프 그림은 당장에 스카프로 상품화시켜도 될 만큼 아름답다.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하철 역사 안에 자리한 레지던시 겸 쇼룸에 걸맞는 형식-형태들이다. 스카프는 접으면 거의 평면이다. 작품 속 스카프도 대개 접혀있다. 목에 묶어 착용하는 스카프는 이야기처럼 매듭지어진다. 이야기는 매듭이 풀리고 다시 매듭지어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인생이 그렇고 인생에 대한 교훈을 주는 신화나 종교의 서사가 그러하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이미지와 상징; 주술적-종교적 상징체계에 대한 시론]에서 맺고 끊는 매듭의 상징을 속박과 해방이라는 양극성을 오가는 해탈과 연결(인도의 경우)한다.

(참고) Underwater Island,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324x131cm

(참고) 기묘한여행,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786x162cm

(참고) 펭귄절지화,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90x90cm
매듭을 푸는 것은 ‘자유, 구제, 문제해결을 의미한다’(진 쿠퍼) 묶고 푸는 두 과정처럼 매듭은 양가적이다. 진 쿠퍼는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 상징 사전]에서 중국에서 매듭은 장수, 복을 묶어두는 일이라고 쓴다. 각 문화권의 구체적 상징이 어떻든 묶고 풀기에는 내재한 것은 서사다. 이 작품은 작은 것을 여럿 배치함으로서 규모를 키운 것이지만, 이지원의 본래 작품 스타일은 규모가 크다. 특히 두루마리처럼 길게 펼쳐지는 대작은 관객이 이동하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읽게 되어 있다. 이러한 장치가 없는 한점의 작품에서 서사는 보다 복잡하게 졉혀있다. 대개 화면 중앙에 배치되는 동식물 이미지는 작가를 대변한다. 가령 추운 지방에 군집 생활을 하는 펭귄이 홀로 떨어져 나와 식물이 무성한 장소로 여행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귀엽고 유머러스한 모습이지만 낯선 곳에 던져진 자의 타자적 상황이 깔려있다. 그의 캐릭터는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출전; 대구아트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