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패트리샤 피치니니: Kinship》, 수원시립미술관


2026년 7월 2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패트리샤 피치니니(Patricia Piccinini, 1965–) 개인전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Kinship)》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오민범 수원시립미술관장, 이연아 학예연구사, 패트리샤 피치니니 작가와 그의 오랜 협업자 피터 헤네시가 참석했다. 7월에 부임한 신임 오민범 관장의 인사말, 작가 인사말, 이연아 학예연구사의 전시 소개, 질의응답, 전시 투어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피치니니의 국내 최초·최대 규모 미술관 개인전으로, 2002년부터 2025년까지 2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조각, 사진, 영상, 설치 등 총 56점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은 7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이며,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에서 열린다. 


오민범 수원시립미술관장

오민범 관장은 수원시립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고향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여성주의와 돌봄, 공존의 문제를 동시대미술의 주요 의제로 다루어왔음을 짚는 동시에 이번 전시로 관람객들이 우리가 살아갈 관계와 책임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패트리샤 피치니니

피치니니는 1965년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나 1972년 호주로 이주했다. 호주국립대학교(ANU)에서 경제사학을, 빅토리아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멜버른 대학교에서 시각 및 공연예술 명예박사를 받았다. 현재 멜버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RMIT 대학 실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등을 활용한 극사실 조각을 중심으로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상상의 생명체를 통해 생명, 기술, 돌봄을 둘러싼 동시대의 문제를 다뤄왔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 대표 작가로 참가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2000년 광주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 수원에서 열리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수원은 한국 여성 작가인 나혜석의 고향이며, 여성주의와 돌봄이라는 자신의 작업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것이 특별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본인이 만들어낸 존재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심지어 못생겨 보일 수 있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된다고 작업의 핵심을 설명했다.


이연아 학예연구사와 피치니니

이어서 이연아 학예연구사는 전시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이번 전시는 미래의 생명체나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라기보다, 낯선 존재를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전시라고 밝혔다. 전시 제목 《킨쉽(Kinship)》은 친족 또는 가족 관계를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인간 가족을 넘어 익숙하지 않은 존재,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는다. 또한 수원시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돌봄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패트리샤 피치니니, 〈바쳐진 존재〉, 2009, 실리콘, 레진, 모발, 뉴질랜드 야생 주머니쥐 가죽, 15×8.5×11cm 
(이 작품은 관람객이 만져볼 수 있게 공개했다)

전시는 ‘깨어나다’, ‘조우하다’, ‘유대하다’, ‘흔적들’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에서는 기술과 자연의 경계에서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시장 입구에는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바쳐진 존재〉(2009)가 배치된다. 

극사실적으로 제작된 작은 여아의 형상으로, 작가는 전시장의 모든 작품을 만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이번 전시에 소개했다고 한다. 또한 관객이 누워있는 아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첫 손길이 전시 관람의 분위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전시 종료 후 교체될 예정이다. 


〈슈폼(속씨식물)〉과 〈독수리 알 인간〉 설치 전경

〈슈폼(속씨식물)〉(2020)과 〈독수리 알 인간〉(2018)은 자연처럼 변해가는 기술과 기술처럼 변해가는 자연, 서로 대비되는 두 방향을 한 공간에서 보여준다.


패트리샤 피치니니, 〈의심하는 토마스〉, 2008, 실리콘, 유리섬유, 인모, 의류, 의자, 100×53×90cm. 

두 번째 섹션 ‘조우하다’에서는 인간과 낯선 존재가 서로 마주하는 순간을 담는다. 그 중심에는 〈의심하는 토마스〉(2008)가 놓인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사도 토마스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 확인했다는 성경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다. 아이가 낯선 생명체의 입안에 손을 넣어보는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은 어른보다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낯선 존재에 다가간다는 점을 보여준다. 


패트리샤 피치니니, 〈연인〉, 2018, 실리콘, 섬유유리, 머리카락, 이불, 41.9×168×64.8cm


세 번째 섹션 ‘유대하다’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형성하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이 섹션에서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받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피치니니는 소설 속의 프랑켄슈타인 의사가 생명을 창조했지만 사랑을 주지 않으면 비극이 생긴다는 소설의 메시지에서 출발해, 비극적이지 않은 다른 결말을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섹션 ‘흔적들’은 작가의 작업 과정과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아카이브 공간이다. 작가 인터뷰 영상, 작업 자료, 작업실에서 가져온 실리콘 샘플 등을 통해 피치니니의 작업 세계를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2013년 캔버라 100주년 기념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제작된 높이 약 34미터, 길이 23미터의 초대형 열기구 조각 〈스카이웨일즈(Skywhales): 모든 마음은 노래한다〉(2024)의 기록 영상이 상영된다.

전시 기간 중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7월 25일에는 피치니니와 피터 헤네시, 고원석이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리고, 7월 24일과 31일에는 인문학 강좌 〈SUMA 렉쳐: SF와 생명의 낯선 존재 끌어안기〉가 진행된다. 7월 29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집시 재즈 밴드 '라 쁘띠 프랑스 콰르텟'의 공연이, 8월 12일에는 수원시립합창단 공연이 무료로 열린다.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상설 교육 프로그램 〈관찰: 기묘한 만남〉, 〈실험: 뜻밖의 이웃〉, 〈사유: 다정한 시선들〉도 사전 예약 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본 전시는 동시대 예술을 조망하는 동시에 수원시의 특수성과 지향점이 맞닿아 있는 부분을 탐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낯선 존재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낯선 존재를 조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관람객은 낯선 타자를 마주했을 때의 반응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다. 또한 극사실 조각을 통해 언캐니(uncanny)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피치니니의 작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의 의식이 결국 현실에서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로 이어진다고 본다. 우리는 아직 낯선 존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로가 가진 차이를 수용할 것인가. 수원시립미술관이 던지는 그 질문을 전시 내내 곱씹으며 현실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질의응답

Q. 작품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며, 낯섦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패트리샤 피치니니) 저는 자연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습니다. 진화와 생명의 다양성에 매료되어 스튜디오로 돌아와 작업을 합니다. 낯섦은 의도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차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듯, 저도 열린 마음으로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조각 작품들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