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이 품은 생명의 순환: 진유리 《부드러운 중력》, KCDF갤러리
공예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진유리 작가의 개인전 《부드러운 중력(Soft Gravity)》이 7월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KCDF갤러리 1전시장에서 열린다. ‘2026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중견 부문 선정작인 이번 전시는 2023년부터 최근까지 제작한 장신구 작품을 필두로 평면, 오브제, 대형 설치작품을 아우르며, 코바늘뜨기라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생명의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로 이어지는 순환의 구조를 거대하게 펼쳐 보인다.

전시전경
홍익대학교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한 진유리는 본래 금속을 매개로 현대장신구 작업을 전개해 왔다. 작가는 현대장신구에 대해 “단순히 금이나 보석의 물질적 가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적 재료를 통해 작가의 예술적 정신과 창의성을 표현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과 활발한 활동에 비해, 아직 대중적 인식이 미진한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덧붙이기도 했다.

작품 세부
견고한 금속에서 유연한 실과 코바늘로 매체가 전환된 변곡점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삶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작가는 아이를 돌보며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도 대학원 연구를 이어가야 했던 시절, “작업실 밖에서도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재료”로서 실을 선택했다. 전문적인 공간과 육중한 장비가 필수적인 금속 작업과 달리, 코바늘뜨기는 일상과 이동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예술적 실천을 지속하게 해 준 해방구였다. 여기에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뜨개질의 신체적 기억이 더해지며 그만의 고유한 작업 언어로 안착했다.

장신구가 걸린 마네킹에도 실을 감아 전체가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안에서 작은 고리들의 연결은 선과 면을 이루고, 이내 독자적인 장신구와 유기적인 덩어리로 변모하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대형 구조물로 증식한다. 이번 전시의 평론을 쓴 홍지수 미술평론가는 “작가는 실을 잇고 엮는 행위를 통해 형태를 구축하고 공간을 새롭게 재해석한다”고 평한다.

특히 진유리의 작업은 철저한 사전 계획에 기댄 설계가 아니다. 작가는 “처음부터 최종적인 결과물을 구상해 두고 움직이지 않는다. 작업이 진행되는 특유의 공기와 분위기, 손끝의 흐름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유기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제작 과정을 밝힌다.
핏줄이나 림프관, 신체 내부 기관을 연상시키는 이 붉은 실의 구조물들은 특정 대상을 재현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의 감정으로 구체화되기 이전 단계의 가장 원초적이고 날것인 감각”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대표작인 〈둥근 변이〉 연작은 도넛이나 나팔을 닮은 작은 유닛들이 군집을 이룬 형태다. 작가는 이 형태가 “작은 구멍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그것이 다시 순환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닮은 듯하지만 조금씩 어그러지고 변형된 각각의 단위들은, 생명이 결코 동일한 복제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지는 역동적인 흐름임을 증명한다. 공식 전시 소개 역시 본 연작을 '증식하고 순환하는 생의 비장한 흐름을 형상화한 목걸이와 브로치 작업'으로 규정한다.

작품 제작과정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붉은색’은 과거 자신을 보호하는 개인적 방어기제의 색이었으나, 출산과 모성적 신체를 경험한 이후 피와 장기, 즉 생명의 근원을 표상하는 색으로 확장됐다. 부드럽고 가녀린 실 한 올은 수없이 반복되는 수행적 노동을 거쳐 압도적인 밀도와 묵직한 무게감을 획득한다. 전시명인 《부드러운 중력》은 바로 이 역설의 미감을 지칭한다. 연약한 선들이 축적되어 스스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거대한 힘을 마주하는 자리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이정표 삼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삶과 외형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내 안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를 작품 앞에서 차분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유리 작가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KCDF갤러리 전경
■ 전시 정보
전시명: 진유리 개인전 《부드러운 중력》
기간: 2026년 7월 15일(수) ~ 7월 26일(일)
시간: 10:00 ~ 18:00 (관람 무료)
장소: KCDF갤러리 1전시장(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8,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