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기록한 역사,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2026년 7월 15일 오전 11시,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소재한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서 마틴 파(Martin Parr, 1952–2025) 회고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한정희 서울시립사진미술관장, 매그넘 포토스의 안드레아 홀스헤르(Andrea Holzherr) 디렉터, 손현정 학예연구사가 참석했다. 최은주 관장과 한정희 관장의 인사말, 안드레아 홀스헤르 디렉터의 축사, 손현정 학예연구사의 전시 소개, 질의응답, 전시 투어 순으로 진행됐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의 첫 사진작가 조명전이자 마틴 파 작고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초기 작업부터 말년에 이르는 14개 시리즈 사진 약 500여점, 영상 1점, 사진집 90권 등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은 7월 16일부터 10월 18일까지이다.

최은주 관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가 마틴 파와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함께 오랜 시간 논의하며 준비해온 프로젝트임을 밝혔다. 작가가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준비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생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눈 덕분에 전시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전시가 한 작가의 회고전을 넘어 동시대 시각문화를 다시 읽고, 마틴 파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이미지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정희 서울시립사진미술관장


한정희 관장은 이번 전시가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의 첫 '사진작가 조명전'임을 소개하며, 마틴 파를 첫 작가로 선정한 것은 사진의 기록적 속성에 주목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매년 1회, 해외 거장과 국내 거장, 동시대 작가를 순환하며 조명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안드레아 홀스헤르 디렉터

매그넘 포토스의 글로벌 컬처 디렉터 안드레아 홀스헤르 디렉터는 마틴 파가 매그넘에 입회하던 1980년대 후반, 그의 강렬한 컬러 사진과 아이러니한 시선이 기존 흑백 다큐멘터리 전통과 충돌하며 매그넘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마틴 파와 자신이 서로 다른 두 개의 태양계에 속해 있는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홀스헤르 디렉터는 '마틴 파는 매그넘을 바꾼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말했다. 전쟁과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일상의 의례 속에서도 역사가 존재함을 보여준 작가라는 것이다.


손현정 학예연구사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전시 기획의 출발점이 '왜 지금 서울에서 마틴 파인가'라는 질문이었다고 밝혔다. 단순한 회고를 넘어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오늘날 우리의 삶을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마틴 파가 1997년 평양을 관광 패키지로 방문해 촬영한 북한 시리즈와 1998년부터 2007년 사이 촬영한 남한 관련 작업을 역대 최대 규모로 공개한다. 아울러 AI가 균질한 이미지를 빠르게 생산하는 지금, 마틴 파의 사진이 현장성과 우연성이라는 사진 매체 본연의 속성을 다시 환기시킨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기획 의도로 꼽혔다.

전시는 2층과 3층 총 4개 전시실과 영상홀로 구성된다. 2층에서는 마틴 파를 세계적인 사진가로 만든 대표 연작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마틴 파, 〈룩소르 호텔 카지노, 라스베가스, 미국〉, 1994, 103.8×123cm

〈작은 세계(Small World)〉는 1980년대부터 작고 전까지 전 세계 관광지를 누비며 기록한 연작이다. 각국의 관광지가 관광객에 의해 소비되는 현상을 포착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찾아가는 여행이 역설적으로 고유한 문화를 훼손하고 획일화된 글로벌 문화를 형성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시장에서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피라미드가 설치된 라스베이거스에서 찍은 이집트 여행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작가 역시 관광객의 위치에서 카메라를 들었다는 점에서, 관찰자이자 동참자로서의 다층적 정체성이 작업 전반에 깔려 있다.


마틴 파, 〈뉴브라이턴, 영국〉, 1983-85, 101.6×127cm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영국 리버풀 뉴브라이턴 해변에서 촬영한 연작으로, 마틴 파가 처음으로 컬러 필름을 사용한 프로젝트다. 노후화된 시설과 생활쓰레기가 즐비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맑은 날에도 플래시를 터뜨려 앞의 대상을 부각시키는 그의 촬영 방식은 이 작업에서 처음 확립됐으며, 슬라이드 필름 특유의 노란 기운이 사진 전반에 감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사진에서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이라고 언급한 작업이다.


마틴 파,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 연작 설치 전경

〈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은 대처리즘 아래 부상한 영국 중산층의 소비문화를 담은 작업이다. 보수당 기금 마련 행사, 공예 페어, 가라지 세일 등 중산층이 자신의 삶을 과시하고 체면을 유지하는 장면들을 포착한다.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상류층과 엘리트 집단의 의례를 풍자적으로 담아낸 연작이다.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왕실 행사, 군사 행진 등을 배경으로 세대를 넘어 답습되는 기성 권위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가볍게 연출한다.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작품 속 손톱이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고,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 보인다'며 마틴 파의 시선이 상류층을 추앙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3층 전시장 전경. 〈상식(Common Sense)〉이 벽면에 가득 메워져 있다. 중앙에는 마틴 파 사진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3층에서는 마틴 파의 시선이 사회 기록에서 이미지와 시각문화 탐구로 확장되는 흐름을 따라간다. 〈상식(Common Sense)〉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하듯 촬영한 270점의 사진을 지역 구분 없이 촘촘하게 배열한 연작이다. 관광 기념품, 패스트푸드, 일광욕하는 피부 등 과잉 소비문화의 양상이 한눈에 펼쳐진다.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SNS에서 매일 보는 이미지들과 너무 닮아 있지만, 이 작업은 30년 전인 1990년대에 이미 촬영된 것'이라고 짚었다. 〈무료한 커플(Bored Couples)〉은 식당, 카페, 휴양지 등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무관심한 커플들을 반복적으로 포착한 연작이다. 작품 속에는 마틴 파와 그의 부인도 등장하는데, 전시장에서 직접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초기 흑백 연작인 〈비국교인들(The Non-Conformists)〉은 1970년대 영국 북부 헵든 브릿지에 머물며 감리교 공동체의 삶을 기록한 작업으로, 컬러 사진으로 유명해지기 전 마틴 파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궂은 날(Bad Weather)〉은 비와 바람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가는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날씨가 나쁠수록 나는 더 행복하다'는 마틴 파의 말처럼, 궂은 날씨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이다. 두 연작은 마틴 파가 컬러로 전환하기 이전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기록하는 시선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음을 보여준다.

〈다 함께 춤을(Everybody Dance Now)〉은 1986년부터 2018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기록한 연작이다. 마틴 파는 '사진이 춤 다음으로 민주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말했으며, 춤추는 현장에서 본인도 직접 춤을 추며 촬영하는 방식을 즐겼다고 한다. 이어지는 〈멕시코(Mexico)〉에서는 멕시코 거리에서 포착된 토착 문화와 미국 브랜드의 충돌을 담은 초상 사진 네 점을 선보인다. 〈죽음의 셀피(Death By Selfie)〉는 셀카봉의 보급과 함께 관광 사진의 양상이 급격히 변화한 2010년대를 기록한 연작으로, 핸드폰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완전히 대체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북한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섹션이다. 〈북한(North Korea)〉은 1997년 마틴 파가 패키지 여행으로 평양을 방문해 촬영한 작업이다. 주체사상탑, 훈장을 단 노인, 관광객을 위해 연출된 행사 장면 등 이데올로기적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공존한다.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북한 사진을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순수하게 사진으로만 보면, 복잡한 건물이 없어 지평선과 하늘이 넓게 담겨 구도가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마틴파, 〈남한(South Korea)〉연작, 1998-2007


〈남한(South Korea)〉은 서울 남대문시장과 대형 마트, 에버랜드, 제주도 등을 배경으로 한국의 소비문화를 담은 연작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한국을 찍은 사진들이지만, 마트의 식품 진열이나 음식 메뉴는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두의 마틴 파〉, 2026,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영상홀에서는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제작한 아카이브 영상 〈모두의 마틴 파〉(13분)가 상영된다. 마틴 파의 동료 사진가, 스태프, 큐레이터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동시대 사진에 남긴 의미를 되짚는 영상이다. 별도의 섹션에서는 90권의 사진집을 직접 펼쳐볼 수 있으며, 희귀 초판본과 작가 서명본도 포함돼 있다. 마틴 파는 사진집을 독립적인 창작 매체로 이해하고 편집과 출판에도 깊이 관여했던 만큼, 이미지의 순서와 편집 방향을 살피며 감상하는 것도 이 전시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전시 기간 중에는 다채로운 연계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국제 심포지엄 〈왜 마틴 파인가?〉에서는 매그넘 포토스 디렉터와 마틴 파 재단 관계자, 국내외 사진가들이 참여해 디지털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윤리와 시각적 풍자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한다. 사진비평가 김현호와 함께하는 강연 〈사진책의 어떤 가능성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I Am Martin Parr》(2024, 감독 리 슐만) 상영 및 영화평론가 김도훈·디자이너 박시영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및 어린이·청소년·가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예정되어 있다. 전시 도슨트 해설은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5시에 진행된다.

마틴 파는 생전에 '나는 그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제목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에는 그의 사진 속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자신임을 환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쌓여가는 시간이 결국 하나의 역사를 이루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전시로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질의응답

Q. (연합뉴스) 큐레이터가 직접 마틴 파를 설득해 전시를 성사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그리고 남북한 연작이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전에 말씀하신 것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손현정 학예연구사) 2023년 겨울 마틴 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 시대에 굳이 사진 전문 미술관이 생기느냐'며 의아해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저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관 프로그램 자료까지 모두 보내드리며 설득했고, 2024년 교토에서 재회해 전시를 구체화했습니다. 한국 커미션 작업도 논의했으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생전에 마틴 파가 '지금의 한국과 30년 전의 한국이 많이 달라졌냐'고 물었던 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화두가 됐습니다. 작고 소식을 접한 뒤에도 전시를 이어가기로 한 것은, 그의 작업이 사진이라는 매체 본연의 힘으로 충분히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Q. (서울아트가이드) 마틴 파가 매그넘에 입회한 후 매그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기획자 입장에서, 마틴 파의 작업이 20세기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 안에서 어떤 균열을 만들었고 사진사적으로 어떻게 재조명될 수 있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손현정 학예연구사) 균열이라기보다 공감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마틴 파가 바라봤던 시대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가 결국 같다는 것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문턱을 낮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A. (안드레아 홀스헤르 디렉터) 마틴 파는 매그넘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매그넘도 마틴 파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도 변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일어난 것은, 마틴 파의 존재가 다큐멘터리 사진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