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갤러리 호수, 《미백: 아직 다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빛》, 문학에서 전통으로 뻗다


더 갤러리 호수 

석촌호수 앞에 위치한 더 갤러리 호수는 2026년 6월 9일부터 7월 26일까지 《미백: 아직 다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빛》을 개최한다. 전시는 송파구와 오랜 연을 맺었던 한국 문학사의 주요 인물인 미백(未白) 이청준(1939-2008)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김선두, 〈이청준을 그리다 시리즈〉, 2014, 장지에 분채, 60×50cm.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김선두 작가의 〈이청준을 그리다 시리즈〉다. 장지에 분채로 그려낸 화면은 단순히 한 작가의 초상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이청준 문학이 지닌 정서와 결을 회화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글과 그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공명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문학과 시각 예술이 그동안 얼마나 가깝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는지를 볼 수 있다.


문학가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공간

전시의 또 다른 축은 궁중자수, 백자, 화혜장, 선자장, 다회 망수 등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 소개다. 한 전시장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무형유산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이번 전시의 큰 장점이다. 이청준 작가의 호 “미백”이 아직 다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빛을 의미하듯이 아직까지 맥이 끊기지 않은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1층 전시전경

 궁중자수의 섬세한 선, 백자의 단정한 형태라던가 선자장이 빚어낸 정교한 손길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전통 공예가 단순한 옛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미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잘 접하지 못하는 합죽선은 조선 시대 여름에 사용됐던 부채의 종류로 이 전시에 등장하는 공예품의 경우, 국가무형유산 선자장(한국의 전통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이 부채는 두 개의 대나무살을 붙여서 만든 합죽선으로 당대 문신 사대부들의 애장품이기도 했다. 


김동식, 흰색백접윤섭, 2025, 한지, 유창목, 낙죽, 85×75cm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통 공예에서 받은 영감을 현대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 김자인 작가의 회화와 영상 작품이었다. 그는 자개를 연상시키는 평면 작업과 함께 끊임없이 요동치는 물, 공기, 빛의 공명 구조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작가만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작업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화면 안에서 옛 기법의 흔적과 동시대적 감각이 겹치고 전통 유산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흐름임을 보여준다. 


김자인 작품 설치 전경

《미백: 아직 다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빛》은 문학과 시각 예술, 전통 공예와 현대 회화·영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들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 문화가 가진 층위의 다채로움을 논한다. 이청준의 호가 '아직 다 밝아오지 않은 새벽'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과거의 유산이 끊임없이 현재의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