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
수원시립미술관이 흑과 백의 예술적 변주를 통해 대립을 넘어선 상호 공존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가 18인의 다채로운 소장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고정관념을 깨는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석철주 / 사진 김달진
수원시립미술관은 행궁 본관에서 2026년 2월 12일부터 2027년 3월 1일까지 소장품전《블랑 블랙 파노라마》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그동안 수집해 온 소장품 중 고산금, 김두진, 이배, 최병소 등 한국 현대미술가 18인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는 프랑스어로 흰색을 뜻하는 ‘블랑(blanc)’과 영어로 검은색을 뜻하는 ‘블랙(black)’을 결합한 제목처럼 흑과 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두 단어는 언어학적으로 ‘빛나다’ 또는 ‘타다’라는 뜻을 가진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됐다. 불이 켜져 하얗게 빛나는 상태와 불이 다 타버린 뒤 검은 재가 남는 과정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앞 이수경 / 사진 김달진
미술관은 이러한 어원적 배경을 바탕으로 동양 철학의 ‘불이(不二)’ 사상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불이란 ‘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상대적인 개념들이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커다란 연결고리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철학적 개념이다. 전시는 흰색과 검은색, 밝음과 어둠을 대립하는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바라본다.
참여 작가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재현 방식에서 벗어나 반복해서 선을 긋거나, 글씨를 베껴 쓰고, 화면을 비워내는 등 몸을 쓰는 반복적인 수행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 흑과 백, 채움과 여백이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화면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교차하도록 유도한 것이 특징이다.

이순종 / 사진 김달진
전시 제목의 ‘파노라마’는 단순히 넓은 풍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작품들이 전시장 안에서 나란히 놓이며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장면들을 뜻한다. 관람객은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을 이동하며 고정된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예술이 지닌 성찰적 태도를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소장품전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관람객이 전시장 안에서 머물며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전시”라며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자신만의 감각과 생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