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함이 유동적인 것이 될 때
이선영(미술평론)
이해균은 그동안 국내외의 산과 바다, 나무 등의 자연에 힘찬 기운을 불어넣는 풍경을 그려왔다. 같은 풍경도 맥락에 따라 달리 읽혀진다. 그의 작품에 많은 산수풍경이 이제 편치만은 않은 것은 얼마 전 일어난 히말라야 빙하의 붕괴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균은 땅과 역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지만, 그때그때의 시사적인 내용을 반영하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오지 여행을 해왔으며, 네팔 지역 또한 그 중 하나이기에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름다운 풍경 탓에 몰려든 등산가와 여행자들의 열기가 더해져 재난의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작가의 심경은 복잡할 것이다. 사건 초기에 홍수니 지진이니 분석이 있었지만, 결국은 산이 무너진 것이다. 산은 깊은 땅속의 마그마가 흘러나와 굳어서 된 것이지만 무너진 산 또한 액화라는 점에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닌가. 모태로 돌아감은 개체로서는 죽음이기도 하다.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쓰나미는 온난화로 인해 산을 지탱했던 영구 동토층이 녹아 높은 지대에 임시 호수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사상파고.163x405cm.oil on canvas.2026
사상파고2.163x405cm.oil on canvas.2026
이 호수가 터져 흙, 암석, 빙하 등이 뒤섞여 무서운 속도로 좁은 계곡을 타고 주변을 휩쓴 것이다. 수천명이 죽고 다치고 실종됐으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의 삶도 막막하다. 그들의 뿌리는 떠밀려온 나무들처럼 뽑히고 말았다. 빙하의 붕괴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예고가 더 섬뜩할 따름이다. 온난화의 주범인 거대 산업 국가 대신에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는 가난한 국가가 희생된 것이다. 큰 재난이 일어났을 때 아래 계층이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은 그것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말한다. 이해균의 이번 전시 작품에는 [이유 없는 죽음]이라는 제목의 무덤 풍경이 포함돼 있어 관객은 산 풍경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한꺼번에 떠밀려온 수천명의 시신을 처리할 수가 없어서 묘비조차 없이 처리되고 있는 사태는 그로 하여금 한국에서도 일어난 억울한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묻힌 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서서히 밝혀지고는 있지만, 이념대립이 심했던 한국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민초들이 집단 매장된 장소도 대부분 깊은 산이다.
이데올로기의 부침(浮沈)이 심했던 한국에서 산은 역사의 비밀을 품고 거기에 서 있다. 캔버스에 황토로 그린 [아우성]은 고요하게 메아리가 울려 퍼져야 할 산의 모습과 달리 요동을 친다. 아우성치며 몸살을 앓는 듯한 격동적인 산세는 민초들의 봉기나 희생부터 최근의 기후 위기까지 다양한 은유로 확장된다. 이해균의 풍경 속 산은 유동적인 지구 내부의 물질이 물리적 힘을 받아 흐르다가 오래전에 굳어진 흐름인 기념비적인 모습이 포착돼 있다. 단단하면서도 흐름이 느껴지는, 물질이면서도 기운을 내재한 그런 산이다. 그 산들의 잠재적 움직임은 얼마 전 일어난 실제의 움직임과 겹쳐져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 속에서 산과 물은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있지만, 현실 속에서 산과 물은 뒤섞여 자연과 인간 문명 모두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대조는 요즘 유행하는 고대 신화의 어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화평론가 캐밀 파야(Camille Paglia)는 [성의 페르소나sexual personae]에서 ‘아폴로/디오니소스’라는 오래된 대조를 상기한다.
(참고도판) 선형작위-산정호수.210x150 Acrylic on korean paper 2023
(참도도판) 선형작위-설악산.210x150 Acrylic on korean paper 2023
뿌리.165x220.Acrylic 황토.on canvas.2025
아우성, 162x210cm, 캔버스에 황토
캐밀 파야에 의하면 이성과 논리는 하늘-컬트의 주신인 아폴로의 영역이다. ‘가혹하고 공포증적인 아폴로 정신은 초인간적인 정결을 앞세우면서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절연시킨다.’ 반대로 디오니소스는 ‘유동적 상태 혹은 미아스마(miasma; 나쁜 공기)가 가득한 습지’와 비교된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고삐 풀린 자연은 디오니소스와 비교된다. 그에 의하면 서구에서 예술은 곧 ‘자연의 과잉을 잘라내는 것. 서구의 정신은 사물의 개념을 규정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백지 위에 선을 긋는다. 바로 이것이 아폴로 정신의 핵심이다.’ 이항 대립의 원리가 그렇듯이 둘 다 숭고하고 둘 다 억압적이다. 단단함과 흐름이 함께할 수는 없을까. 이해균의 작품은 그 경계 위에서 양자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이전에 그린 설악산이나 산정호수 같은 풍경은 산과 물, 그리고 그 사이의 작은 마을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 편재하는 이 시대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풍경조차도 사건 전의 모습처럼 단서를 달게 만든다.
‘세계의 지붕’ 급의 험준한 고산이 없는 한국에 빙하는 없어도 저수지 등이 범람하는 사고는 간간이 일어난다. 이번 전시의 부제 ‘고요한 단순-사상파고思想破高’가 포함된 최근의 유화 [사상파고]는 언제라도 넘칠 기회를 찾는 물결같은 파동이 담긴 대작이다. [사상파고2]에서 넘실거리는 결은 파동으로 우주의 모습을 상상했던 과학사의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대우주 뿐 아니라 모태 또한 이러한 상태와 비슷하다. 고요한 가운데 퍼지는 파동은 그 원인과 결과가 생략되어 있기에 신비로우면서도 불안하다. 낯선 조어인 ‘사상파고’에서 ‘破高’는 한자어로 ‘높은 것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높은 것을 무너뜨림’, ‘높은 벽이나 수준을 돌파함’ 으로 이해된다(챗GPT) 예술의 저항적 태도를 의미하면서도 산이 무너져가는 작금의 현실도 반영한다.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의 고산지대에 자리한 빙하들이 조금씩 녹아 수위를 상승시키고 이번처럼 쓰나미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 온난화의 주범들인 거대 제국들은 자연이 인간을 벌하는 와중에도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유없는 죽음.130x163 oil on canvas 2022
문상가는 길.130x16. 0il on canvas 2026
cloud5.130x160il on canvas 2026
아크릴과 황토 등이 사용된 작품 [뿌리]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의 뿌리는 주변 땅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자신의 일부도 드러낸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수행한다. 나무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듯이 서서히 활동한다. 하지만 장구한 시간의 겹은 두툼한 공간의 결로 나타난다. 위아래로 수분과 양분을 통과시키는 뿌리는 깊이 뿐 아니라 넓이로도 자신을 확장시킨다. 그가 포착한 나무의 일부는 그러한 에너지의 흐름이 만들어낸 형태가 강조된다. 흐름이 굳어진 것이 형태가 된다는 점은 산과 마찬가지다. 역으로 형태는 언제라도 흐름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예측 및 제어 불가능할 때 재난이 된다. 관객은 [뿌리]에서 산맥을 볼 수도 거친 물살을 볼 수도 있다. 유화에 황토까지 더해진 넘실거리는 장면은 홍수를 떠올린다. [cloud5]에서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갖가지 형상으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에서 무작위로 흐르고 있는 구름은 기후 또한 예측하기 힘듦을 예시한다. 이해균이 그린 구름은 자연에 충만한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가 조금이라도 안 오면,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그게 다 재난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도시의 산물인 인공 구조물은 화면 아래와 가장자리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데, 비스듬한 모습이 불안정하다. 이해균은 자연의 거대한 힘과 문명 일부를 대조한다. 인간은 자연을 알고 지배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힘이 재앙으로 다가올 때는 속수무책이다. 작품 [이유 없는 죽음]에서 모노톤의 공동묘지 위에서 불타오르는 석양은 사건 전후의 맥락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한번에 죽은 듯 일괄적으로 조성된 무덤, 그리고 그 무덤들에서 추측되는 가공할 만한 사태는 근대 미학자들이 구별했던 미와 숭고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재난의 시대에 자연은 미를 넘어서 숭고하다. 자연은 인간이 알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힘이다.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졌지만, 우울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가득한 하늘이 보이는 [문상가는 길]은 재난이 끊이지 않는 요즘 세계의 지배적 정서인 애도의 기분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