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잠재력  

아만다 볼드윈 전(5.9-6.30, 제이슨함 갤러리)

강임윤 전 (5. 21–6.27, 뉴스프링프로젝트)


이선영(미술평론)



현재 이탈리아에서 작업하는 강임윤(B.1981)과 미국에서 작업하는 아만다 볼드윈(Amanda Baldwin, B.1984)의 전시는 예술의 뿌리인 자연에 닿아있으면서도 조형적 언어로 가능한 색과 형태가 풍부하다. 그들의 작품에서 추상적 속성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다. 근대미술로 넘어오면서 자연이냐 예술이냐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었지만, 대상과 언어의 조화는 쉽지 않았다. 특히 자연적 뿌리를 잘라낸 자율적 언어로의 추이는 미술을 빈약한 개념으로 전락시켰다. 아만다 볼드윈은 강임윤과 달리 약간의 자연적 도상이 보이지만, 자연을 재현하지는 않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풍요와 다양성의 원천이다. 예술은 동일성을 견지하는 자연에서 다양함을 감지한다. 강임윤은 자연의 변화 과정에 집중하며, 아만다 볼드윈은 지상에서 천상에 이르는 상징적 우주 내부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물질과 에너지가 호환되는 물리 법칙에 따른다면, 그들 작품에 충만한 에너지는 묵직한 실재가 잠재해 있음을 말한다. 이는 코드로 만들어진 가상의 지배력이 더욱 커지는 시대에 회화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시적인 제목이다. 그들의 그림은 문학과의 합작품처럼 여겨질 정도다. 문자는 회화의 향유에 씨앗같은 역할을 한다. 강임윤의 경우 작품 제목들이 모두 포함된 자작시가 있다. 그의 추상은 할 말이 더 많기 때문에 추상인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님을 알려준다. 아만다 볼드윈은 작가가 확정한 몇 가지 구성요소가 있기에 제목의 역할은 더욱 크다. 형태의 환원적 조합에서 제목은 각기 다른 의미와 감성으로 확산되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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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氣)를 받는 회화

제이슨함 갤러리 본관에 최근 작품으로 채워진 아만다 볼드윈 전은 몇가지 한정적 요소로 화면을 구성한다. 화면 중심부를 지배하는 나선형, 그 아래나 옆을 가득 채우는 식물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다양함과 통일성이 함께하기 위한 조건이다. 나선형 움직임을 시작하는 중심점은 하늘로 간주된 화면 상층부에 자리한 하나의 원이지만, 작품 [Winter Air]처럼 여럿인 경우도 있다. 그때 에너지의 출렁임은 달라진다. 마치 기상도에서 기압의 분포처럼 그 안에서 힘의 배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미셀 세르가 [헤르메스]에서 말하듯이, ‘자연이라 불리던 것이 에너지의 형태로 현존’한다. 미셀 세르에 따르면 ‘다른 모든 진보에 앞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힘의 선행성이다. 에너지는 지형도에 선행한다. 에너지는 지형도를 그리고 지형도에 길을 내며 지형도에 깃든다. 에너지는 약호들에 선행하며 약호화를 행한다’ 에너지의 흐름을 자신의 방식으로 체계화한 아만다 볼드윈의 작품은 날씨처럼 다양하며, 정확한 예측이 힘들다. 중심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선명한 선적 궤적을 남기며 흘러간다. 선적 요소를 부드럽게 하는 것은 그라데이션 방식으로 칠해진 색이다. 형태와 구조가 한정된 대신에 다양한 색감이 구사되며, 여러 의미로 파생될 작품 제목과 연동된다. 천체와 지상 식물의 조합처럼 보이는 풍경이지만, 유기적으로 출렁이는 형태는 몸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생체기관처럼 보인다.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생명을 품는 자리를 생각할 수 있다. 모체로부터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고 두툼한 층들로 보호받아야 하는 근원적 자리말이다. 특히 작품 [Eastern Eclipse]처럼 붉은 계열의 작품이 그렇다. 그의 작품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상응이라는 오랜 관념을 반향한다. 나선형을 시작하는 둥근 형태는 달이나 태양, 또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우주적 차원에 존재하는 초신성 등이다. 작품 제목에 천체 및 우주적 사건들이 명기되어 있다. 


산 위에 달, 그 아래에 나무들이 겹으로 접혀서 율동하는 [Blue Moon], 빨려들어갈 것같은 나선형 형태의 중심에 놓인 정오의 달을 그린 [Meridian Moon], 붉은 태양 아래 정렬한 나무들이 있는 [Silverado Sun]이 그것이다. 희미해진 별이 갑자기 밝아진 후 다시  사라지는 별의 일생이 담긴 [Bronzed Nova], 일식이나 월식같은 현상을 표현한 [Eastern Eclipse]은 먼지에서 태어나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별이 일생과 관련된다. 나선형 중심은 근처의 수목(樹木)과의 관계에서 볼 때 천체와도 같은 위상을 가진다. 나무들은 태양의 빛이 필요로 하고 달이 주관하는 물의 운동과 흐름도 필수적이다. 나선형 구조의 선은 수목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과 양분의 흐름처럼 정지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나선형은 형태적으로 증감을 나타내는 도형으로, 우주적 광경에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나타낸다. 천체와 식생은 기후적 현상과도 연결된다. 가령 작품 [Cyclone]처럼 그의 작품에 편재하는 나선형 구도를 회오리 바람이 된다. 그밖에 바람이나 비, 공기 등의 상태를 담은 작품들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시공간을 표현한다. 하늘은 하늘색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식물은 지상의 대표적 존재로 천체에 반응한다. 빛을 향해 가득 팔을 뻗은 가지들, 빛을 붙잡기 위한 잎들이 물결처럼 패턴화된 형태는 연속적인 연결망을 가진다. 나무들은 에너지 발생기인 천체에 조응하기 위해 부드러운 선의 흐름 안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삼나무가 등장하는 [Cypress Showers]는 반 고흐의 물활론적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뾰족하게 솟은 삼나무가 밤하늘 전체에 흐르는 천체의 빛과 만나는 경이로운 풍경을 그린  반 고흐의 작품이 회화적이라면, 아만다 볼드윈의 작품은 자신이 설정한 상징적 우주를 도해하는 편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자연에 내재한 힘들의 상호적 연결을 표현한다는 점은 통한다. 전시부제 ‘Sun Rose’는 들리는 어감상 일출을 떠올리지만, 무기물(별, 지형)과 유기물(식생, 몸)이 한묶음임을 강조한다. 



Installation view of Current Beyond by Eemyun Kang at Newspringproject in Seoul 2026


강임윤의 작품 [Now It Springs Up]은 이탈리아 삼베를 이어붙인 화폭에 만물이 발생하는 봄과 같은 분위기를 표현한다. 햇빛을 가득받고 활발하게 자라는 초록 기운을 표현한 작품들 중 가장 크다. 그는 볼로냐의 골동품 상점에서 말려 있는 삼베를 우연하 만난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여인들이 혼수품으로 직접 짠 삼베 위에 그리게 됐다. 자연적 재료이자 시간과 기억을 지녔다는 점이 좋았다. 잇거나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화폭에 춤추듯 출렁이는 색은 여러 겹의 붓질로 가상적인 원근이 내재한다. 천의 올이 드러날 정도로 물감층이 얇으면서도 깊이 있는 표현이 특징이다. 영국에서 활동 장소를 옮기면서 접한 이탈리아 삼베는 캔버스 천과 달리 물감을 흡수하면서 유동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요리처럼 현지의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탕천의 물성에 따라 작품 분위기가 바뀌는 효과를 낳았다. 육아를 계기로 생활은 작품에 더 깊숙이 들어왔다. 잠재적이며 명시적인 움직임을 잘 받아낸 삼베 위의 작품은 대부분 동사(動詞)로 표현될 수 있다. 형상들은 느리거나 빠르고, 성장하거나 쇠퇴하는 중이다. 정지 매체인 회화에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시적인 작품 제목과 연동되는 다양한 움직임의 표현에 있다, 가령 작품 [Punta della lingua]에서 난색과 한색이 접하는 부분은 색감의 차이에 의한 원근과 운동감이 발생하며, 작품 [Afterglow]에서 바탕과 형상 간의 색감 차이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작품 [Flare]에서 색채대비와 운동은 너울거리는 불길을 암시한다. 그밖에 끌거나 표류하거나 파열하거나 작열하는 등의 동적 이미지가 있다. 변화무쌍한 기상과 기후에서 받는 영감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낳는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는 [Permafrost II]에서 기후변화에 의해 영구동토층이 녹는 장면으로, 문명에 의해 자연의 안전장치가 풀리는 듯한 위기의식을 표현했다. 꽉 묶인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꼭 옥죄던 고체적 분자 배열이 느슨해지는 상태 등이 표현된 작품도 많다. 


대상과 의미를 확정지을 수 없는 과정은 순간으로 동결된 단면만을 현실로 간주하는 상식적이거나 ‘실증적’ 사고와 거리가 있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든 그 과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천과 물감은 그를 진정한 화가로 만들 것이다. 오랜 세월 거듭해서 시도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붓질의 궤적이 남는 곳은 바로 화폭이다. 이번 전시의 부제 ‘너머의 기류(Current Beyond)’에서 모든 현실은 변화하기에 ‘너머’란 현실 이후의 단계를 가리키며, 무엇으로의 변화일지 알 수 없기에 ‘기류’이다. 현실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우리의 일상 경험은 현실을 에워싼 전후, 즉 사전의 기대와 이후의 여운이 더 중요함을 안다. 명확한 형태가 의미의 결정과 연관된다고 할 때, ‘너머의 기류’라는 부제는 그의 작품들을 명확히 표현한다. 전시 작품의 제목들이 모두 시어로 등장하는 자작시 또한 그가 얼마나 작업과 하나가 된 작가인지 알려준다. 자기로부터 출발하기에 자연스럽지만, 한편으로 자기란 얼마나 불확실한 존재인가. 강임윤은 존재로 굳어지기 전과 후에 집중하면서 불확실성을 작품화한다. 작품 [Current]는 온도와 기압 차이에 의한 대기의 흐름 같은 현상을 표현하며, 이는 인간의 영혼에서도 일어난다. 작품 [Undercurrent]는 보이지 않는 내면적 흐름을 포함하며, 작품 [Anima]에서 영혼은 변화하며 붙잡을 수 없는 구름과 같다. 작품 [Before bloom]은 꽃이 피어나기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내재한다. 실로 많은 화가들은 활짝 핀 꽃을 그렸다. 하지만 강임윤은 그것이 피기까지의 고통과 환희를 느낌으로 담았다. 시리즈 작품에는 자연적 변화의 추이가 드러난다. 강임윤은 윤보경(뉴스프링프로젝트 디렉터)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큰 경험보다도,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남겨지는 감각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빈 화면 앞의 작가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에 충실하다. 그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내부를 거쳐 다시 나타나는 흐름’이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