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던 미술이 귀를 열고, 급기야 온몸의 감각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민·카밀 노먼트의 2인전 《어긋난 파동, 흔들리는 시간》은 기존 미술관이 고수해 온 시각 중심의 질서와 박제된 시간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인 오민과 백남준예술상을 거머쥔 카밀 노먼트. 국내외 현대미술계가 가장 주목하는 두 예술가는 ‘소리와 파동’이라는 보이지 않는 매개체를 통해 미술관을 거대한 실험실로 탈바꿈시켰다.



사진 김영나
제1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민 작가의 〈동시〉 연작 7편이 관객을 맞이한다. 순차적으로 재생되는 영상과 사운드의 흐름 자체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시간기반설치(Time-based installation)’ 작업이다. 미국의 수학자 클로드 섀넌의 정보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작업은 뜻밖에도 ‘실수와 어긋남’에 주목한다.
매끈하게 잘 짜인 완벽한 결과물 대신, 작가는 통제되지 않은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노이즈)’에 귀를 기울인다. 화면 속 감독과 스태프, 연주자들은 수직적 위계 없이 수평적으로 배치되어 움직인다. 예측 불가능하게 흩어지고 부딪히는 이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각적 음악이 된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어긋남’이야말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무언의 위로처럼 다가온다.


사진 김영나
제2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압도적인 크기의 삼나무 구조물이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노르웨이관 대표 작가였던 카밀 노먼트가 한국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형 사운드 설치 신작 〈플렉서스(리좀) 서울〉이다.
마치 거대한 식물의 뿌리나 인간의 신경망처럼 뻗어 나간 이 구조물의 핵심 철학은 ‘리좀(Rhizome)’이다. 중심 뿌리 없이 사방으로 자유롭게 연결되는 리좀처럼, 작품은 위아래의 등급 없이 수평적인 관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노먼트는 아르코미술관 건축물이 가진 고유한 소리 주파수를 채집해 음악을 만들고, 여기에 정가 가창자, 인디 가수, 배우 등 서울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흥얼거림을 덧입혔다. 재미있는 것은 감상의 방식이다. 관람객이 이 나무 구조물에 조용히 몸을 기대면, 진동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소리의 떨림이 뼈와 피부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귀로만 듣는 음악을 넘어, 온몸의 세포로 공간에 묻힌 목소리를 만나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사진 김영나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실험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데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을 깨우라고 권한다. 실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보여줘 온 아르코미술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전시 기간 중에는 두 거장의 예술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연계 행사도 풍성하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이옥경과 카밀 노먼트의 즉흥 협연을 시작으로 오민 작가의 퍼포먼스, 대담 프로그램, 그리고 학술 대담 등이 이어지며 전시에 생동감을 더할 예정이다.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파동. 익숙했던 미술관의 시공간을 흔드는 이 특별한 경험은 오는 7월 19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