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화면에 장미가 빼곡하다. 빼곡하지만, 정작 장미를 쉽게 알아볼 수는 없다. 패턴화하고 양식화된 화면 속에 장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위원소(모나드)가 동어 반복되면서 패턴을 만드는 것을 모듈 구조라고 한다. 작가의 경우에는 하나의 장미가 반복 열거되면서 하나의 패턴을 만든다. 얼핏 하나의 장미 같지만 사실 똑같은 장미는 하나도 없으므로 비정형 모듈 구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는 잇대어진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 여기서 사각형의 프레임은 아마도 존재의 집을 상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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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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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우연한 기회에 수몰지구로 지정된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미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는 마을에 이러저런 이유로 마을을 떠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남아 이방인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고, 주인 잃은 개들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입자…
풍부한 중간계조와 흑과 백이 대비되는, 그러면서도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 신선주의 그림은 흑백사진을 닮았고 메조틴트 판화를 닮았다. 핍진성 곧 대상과의 영락없는 닮은꼴이 하나같이 사실적인 묘사와 재현에 바탕을 둔 회화와 사진과 판화를 아…
예술은 자의식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없지만 유독 예술가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뭔가를 강력하게 원하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결여의식이며 결핍의식이랄 수 있는 자의식은 예술창작의 중요한 계기이며 동력이 된다. 토마스 만은 결여 위로 솟아오…
김윤종은 자연을 그리고 하늘을 그리고 구름을 그린다. 이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서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이와 신비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아마도 시종 작가의 그림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주제의식일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와 신비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인간…
표영실의 그림을 보면서 받은 첫인상은 그림 속에 여백이 많고 암시가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문학에 비유하자면,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일관되거나 긴밀한 서사로 짜인 소설보다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그 구멍으로 작가가 제시하거나 미처 제안되지 않은 의미들이 들락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