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에 남아 있는 미지의 몫

  

이선영(미술평론)

 


베어낸 나무들이 화면 가득 쌓인 적(積) 시리즈는 소재도 소재지만 작가의 현실 재현 능력을 시험하는 장으로 다가온다. 잘린 나무의 까칠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그 소재에 매달린 탓에 뛰어잔 재현적 기술이 돋보인다. 사진을 비롯해서 여러 재현적 장치가 발달한 상황에서 붓질로 그러한 경지를 이룬다는 점은 여전히 놀라움을 준다. 잘린 단면의 생기가 남아 있는 나무 뭉치들은 숲의 밀도 관리를 위해서 베어낸 것인지, 겨울을 나기 위한 난방 재료 같은 필요를 위한 것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대지로부터 분리된 채 다른 순환의 주기에 들어와 있다는 것, 그 중 하나로 예술적 소재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종칠은 나무들이 쌓여 있는 맥락은 과감히 생략하고 화면을 꽉 채웠다. 정밀한 묘사 덕분에 화면 안에 가득 쌓인 것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올 듯하다. 그의 작품은 화면 안에 담아낸 대상을 관객 앞에 그대로 제시하는 회화의 한 기능을 수행한다. 



 積 145.5 x 112cm 1991


 積 162.0 x 130.3cm 1992



줄리언 벨은 [회화란 무엇인가]에서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천년 동안 유럽을 풍미하던 미의식으로, 자연 대상을 최대한 유사하게 복제하는 눈속임 기법을 따른 작품이 완성도 높은 회화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재현적 회화는 현실이 아닌 현실 효과를 낳는다. 오늘날 현실효과를 낳는 첨단 기기들의 휘황찬란한 시각적 산물은 수세기 동안의 재현적 관습을 학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양적 확대가 회화의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킨다. 손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닌 손가락으로 코드를 선택함으로서 만들어지는 환영이 지배한다. 자크 오몽은 [이마주]에서 현실효과는 ‘재현적 이미지 안에 유사성의 지표들 총체에 의하여 관객에게 생산되는 효과’라고 정의하며, ‘근본적으로 이것은 자연적 지각을 모방함으로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약호화된 관습들’이다. 재현적 작품에서 재현 대상은 의미와도 연결된다. 


누군가는 김종칠의 작품을 보고 ‘저건 나무야’ 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 잘 그렸기에 그냥 ‘나무’가 돼버리는 것이다. 에른스트 크리스와 오토 쿠르츠가 같이 쓴 [예술가의 전설]에 의하면 그림과 실물을 동일시하는 것은 주술적 사고이다. 저자들은 그림과 실물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종교 분야에서 유례가 깊다고 말하는데, 종교의 방점이 달라지는 현대에도 이러한 동일시는 인간의 무의식에 잔존한다. 누군가는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무한한 선물을 생각할 수 있다. 김종칠의 경우에는 인간의 개입을 포함한 나무의 순환이 작품 내용을 이룬다.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현대미술은 언어의 지시적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파이프를 그리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르네 마그리트이다. 하지만 마그리트 조차도 대상이 부재한 추상미술이 더 심오한 작품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추상미술이 개념화 되면 그 또한 재현과 다르지 않다. 관념의 재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더 상투적일 수 있다. 



 積 145.5 x 97.0cm 2004


 積 145.5 x 112cm 2005



관념이란 일반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보이는 것에도 미지의 몫이 있기 마련이다. 보이는 대로 그려도 화가는 매 순간 선택한다. 김종칠의 작품에서 현실의 단면은 그 전후가 생략될 때 수수께끼로 보인다. 사진이 그렇고 사진을 활용하는 그림 또한 그렇다. 적(積) 시리즈의 한 작품 만이 붉은 벽돌 집의 일부가 보일 따름이다. 이 경우에는 땔감일 것이고 현재의 도시 의 생활 인프라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나무라는 물질은 에너지를 잠재한다. 태양에너지를 붙들어 온 지상의 생물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나무는 직접적인 땔감이 아니어도 그 따스한 느낌은 여러 가지로 활용된다. AI 가 곧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몰라 우왕좌왕 하는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에너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에 가득 쌓인 것들은 근대에 화석 연료의 쓸모가 발견되기 이전 수 천 년 간 인류에게 온기를 제공했음을 알려준다. 


다른 시각 매체에 비해 매우 오래된 연혁을 가지는 회화에 몰두하는 작가로서는 고풍스러운 소재에서 자신의 솜씨를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자연적 재료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인 도끼는 화가가 자연을 그림으로 가공하는 도구인 붓에 상응한다. 그의 작품 속 도끼의 자루는 그 자체가 가느다란 나무이다.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소재와 잘 어울릴 수 있다. 가령 전후의 추상미술에서 단시간에 말라야 하는 공업용 도료는 그림의 정체성이라고 여겨지는 얇은 표면을 그리는데 적합했다. 깊이의 표현을 원하는 동양 화가는 스며드는 재료인 종이를 선호한다. 김종칠의 제목이자 주제인 ‘적(積)’과 관련돼서는 매대에 가득 쌓인 물건을 낳은 풍요의 시대에 ‘아쌍블라주’의 미학이 생겨나기도 했다. 상품은 금방 쓰레기가 되기에, 아쌍블라주는 쓰레기나 고철더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림이라는 환영조차도 생략한 채 사물이 그대로 제시됐다. 



 빅아일랜드 33.3 x 19.0cm 2026


 빅아일랜드 33.3 x 19.0cm 2026



하지만 이러한 즉물적인 미학은 대중을 현대미술로부터 더 멀어지게 했다. 무엇을 담든 회화라는 환영의 형식은 간접적이다. 그것은 현실 그자체와 거리를 두면서 작동하는 미학의 성격을 보존한다. 그의 작품은 사실에 극히 충실하면서도 추상적이다. 앞서 말한 관념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추상이 아니라, 맥락이 부재한 대상이라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극사실적 정밀함을 갖춘 대상이 추상적이라는 역설이다. 그림이 그리기를 위한 경연장이 될 때 대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단면까지 노출하고 있는 오래된 자연적 대상은 한낮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밝은 면의 세부 묘사에 몰두한다. 마치 하얀 석고상이 명암을 반영하는 이상적인 대상인 것과 마찬가지다. 거칠거칠한 나무 껍데기의 묘사 또한 서양화 물감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김종칠의 ‘적(積)’ 시리즈는 나무들이 쌓인 각도도 여럿이며, 통나무가 아닌 각목으로 가공된 것도 보인다. 


풍경으로 줌 아웃 되면 물감의 흔적은 자유로워진다. 작품 [빅 아일랜드]에서 나이프를 사용한 두툼한 채색은 풍경을 재현하면서도 자체의 질감을 드러낸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의 표현에서 물감은 진흙처럼 질척하게 사용된다. 여기에서 그림은 대상의 투명한 전달자가 아니라 대상에 상응하는 무엇이다. ‘적(積)’ 시리즈가 투명한 창문을 통해 보여진 대상이었다면 풍경에서는 붓의 흔적이 강하게 남는다. 여기에서는 물감이 두텁게 쌓인다. 전경에 야생적으로 뻗은 나무는 굵고 힘찬 선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빅 아일랜드]에서 전경의 나무줄기에 흐르는 힘찬 붓질은 후경의 파도치는 바다와 동일하다. 작품 [여명]에서 회색빛 도시를 일깨우는 자연의 빛은 인상파적인 붓텃치로 채워졌다. 하늘과 물, 그리고 빛의 하모니 사이에 도시가 떠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부터 표현주의, 야수주의, 인상파 등 근대미술의 여러 어법들이 동원되며, 각 소재에 적당한 어법을 선택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