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은 2026년 9월 21일 오후 1시 30분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에서 현대공예 기증특별전 《에퀴녹스: 추분_춘분》 개막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박상빈 서울공예박물관장과 기증작가 장응복, 황혜림 학예사가 참석했다. 

먼저 박상빈 관장의 인사말, 장응복 작가의 인사말로 시작해 전시 개요 및 작가 소개, 교육 프로그램 소개 순으로 진행됐다. 이후 참석자들은 전시장으로 이동해 학예사의 안내로 전시를 둘러보는 투어로 이어졌다. 개막식은 같은 날 오후 4시에 열렸다.


서울공예박물관 박상빈 관장


박상빈 관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의 전통 문양을 가구와 생활 기물,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해 온 장응복의 작업 세계를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전시라고 밝혔다. 그는 전시 제목인 '에퀴녹스'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추분과 춘분을 뜻한다는 점을 짚으며, 가을이 깊어가는 추분에 시작해 이듬해 봄을 기다리는 춘분까지 이어지는 전시 기간 자체가 뜻깊다고 말했다. 한 디자이너의 철학이 장인의 손을 만났을 때 어떻게 재해석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장응복 작가가 평소 작업해 온 대표 패턴과 자료를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기증해 준 데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장응복 작가


장응복 작가는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가 그간 20여 년에 걸쳐 함께 협업해 온 여러 공예 작가들과의 작업을 함께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스스로를 공간을 위한 작업을 해 온 디자이너로 규정하며, 그 안에 공예를 녹여 넣는 작업을 이어왔다고 전했다. 공예의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오랜 기법의 장점과 기술을 현대적인 개념으로 재해석해 동시대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것이 자신의 작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으로는, 그동안 협업 작가들과 개념과 계획만 공유하고 실제 제작은 장인들이 맡아온 것과 달리, 은행나무를 소재로 한 한지 작업을 비롯한 몇몇 신작은 직접 공예 기법을 배워 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공예와 디자인, 미술, 나아가 일상을 아우르는 다양한 담론이 오가고 한국 공예가 산업이나 건축과 맞물려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혜림 학예연구사


본 전시는 9월 22일부터 2027년 3월 7일까지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전통 무늬와 공예를 일상생활과 공간으로 확장해 온 장응복의 40여 년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로, 무늬, 한지장, 조명, 공간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는 장응복의 무늬 작업을 집약한 1부 '무늬집', 무늬가 사물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2부 '집 속의 집', 절기의 흐름을 형상화한 신작 3부 '탑돌이' 세 구간으로 구성됐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절기인 추분에 시작해 이듬해 춘분에 마무리되는 전시 일정에도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자연의 순환과 조화의 의미를 담았다. 장응복 작가가 그간 작업해 온 대표 패턴과 작품, 자료를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마련된 자리이기도 하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블라인드


황혜림 학예사는 전시장 투어에서 먼저 장응복이 다루는 '무늬'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는 사물을 단순히 이미지 차용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왔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짚었다. 입구에 걸린 모내기 무늬 블라인드를 지나 들어서면 1부 '무늬집' 공간이 펼쳐진다. 소용돌이 형태의 3단 구조물 안에는 도원몽, 산수, 담(淡), 따뜻한 기하학, 촉각의 무늬, 움직이는 무늬 등 여섯 가지 개념으로 전개된 100여 종의 무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배치돼 있다. 

1부 전시전경


서구적 미감이 세련됨의 기준처럼 여겨지던 시절 규방공예와 한국 문양을 동시대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해 온 작가의 활동을 조명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복주머니와 부채, 석류, 화조도 같은 전통 무늬에서, 1990년대 말 선보여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꽃신 패턴까지 다양한 시기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장응복, 〈조각잇기-벽〉, 2013, 느티나무에 옻칠, 실크에 프린트, 한지, 린넨, 유리에 디지털 프린트 등, 700×270cm


이 주제의 대표작인 〈조각잇기-벽〉은 72개의 나무틀에 실크와 한지, 유리 등으로 표현한 무늬를 결합한 대형 작품으로, 십장생과 모란, 꽃신, 물고기, 부채, 숟가락 등 대표 무늬를 담은 모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다. 우리나라 전통 조각보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으로, 섬유는 본래 입체화하기 까다로운 재료지만 조각보의 개념을 단순히 선을 잇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물성을 접합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입체적인 조형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장응복, 〈낭화 지우산 샹들리에〉, 2026, 대나무, 한지, 130×200cm, 
(뒷편)〈바다〉, 2026, 명주에 쪽염, 58×290cm*17ea
〈부채테이블〉, 2026, 체리나무, 지름 240×73cm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3부 '탑돌이' 공간은 장응복 작가가 직접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2015년 프랑스 도메인 드 부아부셰에서 진행한 워크숍('Our Patchwork Pagoda')에서 처음 구상한 개념이라고 소개하며, 산에서 돌탑을 쌓거나 사찰에서 탑 주위를 돌며 소원을 비는 우리 문화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말했다. 쪽빛으로 물들인 〈바다〉와 디지털 프린트한 한지 벽지 작업 〈그리운 금강산〉이 공간을 둥글게 감싸며, 천장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대로 옮긴 별자리 무늬가 프린트돼 있다. 중앙에 놓인 대형 조명 〈낭화 지우산 샹들리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지우산장 윤규상과 협업해 전통 지우산의 구조를 조명으로 재해석한 신작으로, 우산을 썼을 때 안쪽에서 올려다본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하단의 돌

 
장응복은 작품 하단에 놓인 돌 가운데 일부가 경기 파주 자택 인근에서 주운, 철분 성분으로 붉은 무늬가 자연스럽게 생긴 돌이라며, 평소 산책하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둘 모아 이번 설치에 함께 놓았다고 말했다. 이 공간에는 사운드 작가 남배가 작가와 영감을 공유해 재해석한 음악도 함께 흐르며, 소리와 바다·금강산의 무늬,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저마다의 일상적 염원을 빌어보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영상 아카이브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장응복이 80~90년대 초부터 함께해 온 여러 협업자들과의 관계를 다룬 인터뷰 영상이 소개된다. 


장응복, 〈은행나무〉, 2026, 한지, 748.7×290cm


2부 '집 속의 집'에서는 서로 다른 공예와 무늬가 모여 하나의 집을 이루는 개념을 공간으로 구현했다. 사물과 시간, 기억이 쌓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집'을, 서로 다른 공예와 재료가 관계 맺는 공간으로 확장해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대형 설치작 〈은행나무〉는 서울공예박물관 마당의 은행나무를 모티프로 한 작업으로, 초록이 아닌 가을에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의 색을 표현했다고 소개됐다. 총 40개의 패널로 구성돼 있으며, 공예박물관 마당의 은행나무가 지닌 차경의 의미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작품 옆에 놓인 은행나무의 모습


그 앞에는 조선시대 곡식계를 재해석한 대형 평상이 놓여, 관람객을 너른 마당으로 맞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장응복, 〈빛 기둥 캐비닛〉, 2010, 나무, 한지, 자개접합, 유리, 아크릴, 디지털 프린트, LED, CNC, 100×100×250cm*2


200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온 한지 지장(紙欌) 연작도 이 구간의 중심을 이룬다. 나무 판재로 막힌 일반 가구와 달리, 얇은 창살 사이로 빛이 투과되며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특징이며, 과거 관복을 보관하던 장(欌)의 형식에 직접 그린 화조도를 결합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대형 〈이십사절기 화문석〉은 추분·춘분, 하지·동지 네 절기를 표현했으며, 오리지널 한지 지장 맞은편에는 한지 대신 다른 소재를 사용하되 전통 지장의 비례와 형태를 따르면서 오늘날의 생활 방식에 맞게 재해석한 〈빛 기둥 캐비닛〉이 놓였다. 


장응복, 〈집-집〉, 2024, 소나무, 자작나무, 수방사, 한지, 288×288×320cm


구간 안쪽에는 두 칸의 〈빛 기둥 캐비닛〉과 그 가운데를 잇는 가변형 설치작품 〈집-집〉이 자리한다. 

황혜림 학예사는 섬유라는 재료가 유연한 만큼 혼자 힘으로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이지만, 장응복이 공간 디자인과 서비스 영역을 함께 넓혀오며 다양한 소재와 물성을 모듈 방식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고민해 온 결과 이런 가구이자 집의 형태로 확장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닥에 깔린 느티나무 화문석은 앞서 1부 무늬집에서 소개된 청와대 느티나무 바닥에서 받은 영감을 다시 화문석으로 구현한 작업이며, 뒤편 가구장 전면에도 같은 화문석 패턴이 다시 활용됐다. 학예사는 장응복의 작업이 단순히 도면 위에 머물지 않고 의복이나 가구, 병풍, 블라인드 등 일상 곳곳에 쓰임으로 존재해 왔다는 점을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눈여겨봐 달라고 당부했다.


본 전시는 한국의 전통 미학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지, 목재, 전통 도안과 명주천 등 다양한 재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고유한 미적 특성을 강조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의 시너지가 돋보인다. 다시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요구되는 현재, 장응복의 작품과 전시는 그 요구에 부합하는 흐름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