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은 2026년 9월 16일 오전 10시 문화역서울284에서 기획전시 《돌봄의 디자인 Caring by Design》 개막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김경배 공진원 원장과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 총괄 큐레이터가 참석했다. 행사는 홍승호 팀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경배 원장의 인사말, 정다영 총괄 큐레이터의 전시 소개 순으로 이어졌다. 이후 정다영 큐레이터가 직접 안내하는 전시장 투어와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홍승호 팀장


전시는 9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46일간 문화역서울284 1, 2층에서 열린다. 본 전시는 김태동, 데이지 지옌 장, 라드,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 박선민, 배윤호, 백윤석, 보칼, 서지우, 안드레스 하케, 얀 보르만, 에스오에이, 에이루트, 에이코랩, 이병엽+차진엽, 정영선, 중소도시포럼, 첸트랄라+알렉산드라 켕지오렉, 최정화, 한성필 등 국내외 작가 20명(팀)이 참여해 사진·조각·설치·영상·모형 등 33점을 선보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는 1부 '쓸기, 닦기, 지우기', 2부 '건축을 가꾸다', 3부 '도시를 돌보다', 4부 '보이지 않는 노동' 등 4부로 구성되며, 전시장 곳곳에는 공공디자인 정책·사업과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을 돌봄의 관점에서 소개하는 '공공디자인 도킹 스테이션' 네 곳이 배치됐다.

김경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김경배 원장은 인사말에서 공공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그리고 완성된 이후 계속 사용되기까지 거치는 여러 과정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라고 전시를 소개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10월 23일부터 문화역서울284와 RTO를 비롯해 전국에서 열리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에 앞선 전초전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말하며, 거리에 나와 있는 시설물들이 만들어지고 유지 및관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보다 포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공디자인을 하드웨어 중심의 시설물 개념에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문화적 경험 중심의 '공공문화서비스'로 확장해 나가겠다는 방향성도 함께 언급했다.


정다영 총괄 큐레이터


정다영 총괄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가 공공디자인을 새롭게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유지하고 돌보는 실천으로 바라보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시민이 체감하는 공공성은 결국 공간이 사용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며, 그 시간 동안 안전하고 쾌적하게 유지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돌봄이라는 개념을 사적이거나 가정적인 차원을 넘어 도시의 일상적 환경을 통해 구체화되는 사회적 가치로 확장해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도시와 건축, 실내 공간을 하나의 살아 있는 운영 시스템으로 살펴보고, 공적 공간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보수·수선·점검·청소 행위와 그 안에 담긴 노동의 가치를 조명한다. 정다영 큐레이터는 공간 디자인에 관한 설명을 보탰는데, 문화재인 이 공간의 벽면을 손댈 수 없어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과 이를 지지하는 철제 프레임, 그리고 이를 감싸는 래칫 스트랩을 전시 디자인 언어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가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는 매개라면, 짐을 옮길 때 쓰는 든든한 보조 도구인 래칫 스트랩은 전시의 주제를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라는 설명이다.

투어는 서울역에서 문화역서울284 내부로 들어오는 여정을 재현한 '돌봄 디자인 사물 읽기' 구간에서 시작됐다. 우수 공공디자인상을 받은 도시의 돌봄 기물들을 만화가 홍성윤이 해제한 텍스트와, 백윤석 작가가 도시 외부에서 공간 내부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돌봄 사물을 영상으로 엮은 작업이 관람객을 맞는다.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 〈닦기/자국/유지관리: 실외〉, 1973, 기록 사진, 가변 크기


1부 '쓸기, 닦기, 지우기'는 스스로를 '유지관리 예술가'로 처음 선언한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의 작업으로 문을 연다. 미술관 계단이나 그 앞 도로를 일정 시간 이후 직접 닦는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가시화한 작업으로 소개됐다. 


최정화, 〈청소하는 꽃〉, 2013, 혼합재료, 가변 설치


이어 최정화 작가가 청소 도구들을 화려한 꽃 형상으로 재구성한 설치 작업, 2025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핀란드관 출품작이기도 한 보칼(Vokal)의 영상 작업이 자리한다. 보칼의 작업은 알바 알토가 설계한 핀란드관이 실은 세 차례의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보수·유지관리를 맡았던 인물들을 다시 화면 앞으로 불러내어 그들 역시 이 건축물의 공동 저작자임을 알리는 설치 영상이다. 


무인양품의 기록물들. 이번 전시의 주요 언어로 상정된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과철제 프레임, 래칫 스트랩이 돋보인다.


무인양품이 2020년 진행한 영상 캠페인도 소개되는데, 세계 각지의 도시와 공간을 청소하고 씻고 닦는 행위를 담아 청소를 개인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행위로 조명한 작업이다. 


안드레스 하케, 〈팬텀. 미스, 렌더링된 사회〉, 2012-2017, 도면, 사진, 기록영상, 프로젝트 북, 가변 크기


2부 '건축을 가꾸다'는 완성된 이후에도 계속 남는 건축물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를 묻는다. 안드레스 하케는 유명 모더니즘 건축물 지하에 숨겨져 있던 유지관리용 창고와 청소 도구들을 드러내는 2013년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서지우, 〈때 빼고 깜빡이 no.1〉,〈때 빼고 깜빡이 no.2〉, 〈마치 서울이란 바다에 뜬 아파트란 배처럼 no.2〉 전시 전경.


서지우 작가는 최근 해체된 힐튼 서울에서 나온 초록 대리석 파편을 수집해 조각으로 재구성했는데, 사라진 건축물도 또 다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건축가 이병엽과 안무가 차진엽이 함께한 작업도 있다. 한옥의 벽이나 바닥을 수리할 때 콩기름을 먹여 문질러 광을 내는 전통 기법 '콩댐'을 바탕으로, 올해 초 다른 장소에서 제작한 콩댐 바닥면을 이곳으로 옮겨와 전시 기간 중 관객이 함께 문지르는 참여형 퍼포먼스로 이어간다. 이 작업에는 이미 200명 넘는 참여자가 함께했다고 소개됐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실제 소품

영상 속의 장소를 구현했다

이병엽+차진엽, 영상 작업 일부


건축을 가꾸는 섹션과 도시를 돌보는 섹션 사이에는 '거리와 온라인 공간의 공공디자이너' 도킹 스테이션이 자리한다. 행정 제도 바깥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영역을 돌보는 모습에 주목한 구간으로, 온라인에서 청소·보수 활동을 통해 주목받는 인플루언서들의 이야기와, 최근 덕수궁과 서촌 일대에서 나무에 니트를 떠 입히는 '얀바밍(Yarn bombing)' 활동을 벌여 온 시네코 스튜디오의 작업이 소개된다.


얀 보르만 작가의 사진 작업 전경


3부 '도시를 돌보다'로 이어지면 얀 보르만의 작업을 만난다. 그는 2007년부터 도시 곳곳에 생긴 균열과 흠집을 색색의 블록으로 메워온 작가로, 지금까지 세계 수백여 개 도시에서 작업을 이어왔다. 레고와 비슷해 보이지만 레고의 협찬을 받지 않는 것이 스스로 정한 원칙이라고 한다. 

정영선 조경가의 서울 선유도공원 작업 계획 일부

뒤이어 조경가 정영선의 서울 선유도공원 작업이 소개된다. 옛 정수장 시설을 그대로 살려 조성된 이 공원은 처음 계획 당시 반대가 컸지만, 지금은 도시 재생과 돌봄이 맞물린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4부 전시전경


2층으로 올라가면 4부 '보이지 않는 노동'이 이어진다. 정면에 걸린 강렬한 인물 사진은 건축 공간을 뒤에서 청소하고 유지·관리해 온 사람들의 초상을 담은 김태동 작가의 작업이다. 이어지는 영상실에서는 배윤호 감독이 서울역을 문화역서울284로 복원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옆에는 이번 전시에 영감을 준 문헌들과 관련 출판물을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참고 도서들을 읽어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역대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수상작을 돌봄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는 '공공디자인 라운지'가 볼 수 있다. 실생활과 디자인이 적극적으로 융합된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질의응답

Q. (디자인프레스) 원장님께는 공공디자인을 포함해 앞으로 이끌어가실 전반적인 디자인 정책 방향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큐레이터님께는 전시를 관람할 때 관객들이 유의해서 보면 좋을 관람 팁을 부탁드린다.
A. (김경배) 공예·디자인·전통문화라는 세 영역을 하나로 묶어 운영해 왔다며, 공예는 전통 계승보다 현대 공예 쪽에 방점을 찍어 관광 기념품과 하이엔드 상품이라는 투 트랙으로 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고 답했다. 손기술이 사라져 가는 문제에는 기업·학교·장애인·지역 창작소를 지역 단위로 묶는 특화 클러스터를 조성해 2~3년씩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K콘텐츠 세계화와 전통문화 IP 활용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디자인에 대해서는 제품·환경·그래픽·영상·서비스 체계가 모두 결합된 이 시대의 중요한 의제라며, 시설 중심으로 국한됐던 '공공디자인 1.0'을 사람이 체감하는 경험과 서비스 중심의 '공공디자인 2.0'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한복의 경우 전통한복의 체계를 정비하는 동시에 '생활한복'이라는 이름으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하는 두 갈래 전략을 펴고 있으며, 이달 말 밀라노 패션페어에 5개 브랜드로 참가하는 등 해외 판로 확대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광장시장 등 전통시장을 한복진흥센터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정다영) 이번 전시가 비교적 선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개별 작업 자체도 흥미롭지만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난 뒤 우리가 살고 있는 평범한 공간과 사물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유지돼 온 것이며, 그 뒤에는 이를 돌보고 가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 역시 이 공간을 유지해 온 미화·점검·수리 담당자들의 노력을 새롭게 알게 됐고, 이들의 노동이 흔히 이야기되는 '스타 디자이너'의 역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Q. (디자인프레스) 투어 중 이 공간 자체가 문화재라 벽에 손댈 수 없어 특정 소재를 전시 디자인에 활용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외에 전시를 준비하며 겪은 다른 어려움이 있었는지.
A. (정다영) 이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많은 돌봄을 요구하는 시간이었다고 답했다. 큐레이팅이라는 말이 영어 '케어(care)'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100년 가까운 시간이 쌓인 이 공간은 지금 앉아 있는 자리만 해도 20㎝ 가까이 기울어져 있을 만큼 전시를 열기에 조건이 까다로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공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며 국가유산 관계자들과 세심하게 협의를 거쳐야 했던 과정 자체가 결국 이번 전시가 말하는 '돌봄의 디자인'을 몸소 겪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