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 지역 연계 작가 연구 II – 김점선 (하편)

아치울 마을과 김점선의 자유 선언으로의 예술


김성호(미술평론가, 성신여대 초빙교수)



V. 작품 분석과 해설 – 말, 오리, 튤립, 들꽃에서 복합 응용 미술까지

김점선 작품의 소재 및 주제별 범주화와 주요 특징은 어떠한가? 간단하게 그 개요를 정리하면 아래와 도표와 같다.






김점선의 ‘① 실험 영상과 이미지/텍스트 회화’ 범주에서 초기 시대의 단발적인 퍼포먼스는 몇 점 없지만 미술사적으로는 유의미한 작업이다. 대학원 재학 중에 이화여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영상 작품으로 자신이 누드 상태로 촬영해 만든 세 편의 20분짜리 실험영화52)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실험영화 중 누드로 영상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가장 저항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았다.53) 또 다른 작품은, 1975년 대학원 졸업식에서, ‘쓰러진 학생을 관 속에 넣어 장례식을 치루는 <홍씨상가>(1975) 해프닝’54)으로, 미술 전공자에게 졸업이라는 것이 사회로 향한 새 출발이기보다는 불안한 미래를 맞닥뜨린 암울한 현실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풍자적 비판의 퍼포먼스였다. 나아가 이 작품은 “당시 오일 쇼크의 여파로 높았던 실업률과 계엄령, 유신체제로 이어진 불안한 정치 사회적 상황을 주제로 삼았다”55)라고 하는 점에서 그녀의 사회 비판적 비디오 영상으로 평가하기에 족하다.

또한 ‘① 실험 영상과 이미지/텍스트 회화’에서 ‘이미지/텍스트 회화’도 주요하다. 고등학교 시절, 다빈치 콤플렉스 때문에 말을 그리기보다 “이것은 말이다”라는 텍스트로 대신했던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의 경험담을 역으로 적용하여 말 그림과 함께 “이것은 말이다”라는 텍스트를 병치한 작업이 대표적이다. 또는 오른손을 통한 익숙한 그리기 방식과 고정관념을 탈주하고자 왼손으로 어눌하게 써나간 텍스트 작업도 이러한 범주에 해당된다. 전자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나 문자도(文子圖)처럼 변용한 ‘혼성 이미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텍스트 자체를 시각기호로 도치환 ‘변용 이미지’라고 할 만하다. 아이코노텍스트란 무어인가? 프랑스의 사진작가 겸 이론가인 미셀 네를리쉬(Michael Nerlich)는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es)를 “글과 그림이 분할될 수 없는 총체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으로 규정한다.56) 이것은 마치 동양 전통의 문자도(文字圖)나 현대적 서화(書畵) 혹은 현대적 캘리그램과 유사한 이미지(icon)와 텍스트(text)의 융합체를 선보인다.

현대미술의 장에서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가 여성의 얼굴을 바탕으로 한 흑백 사진 위에 굵은 글씨체로 강렬한 슬로건을 삽입한 작품 〈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나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하는 다양한 연작을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성된 아이코노텍스트의 대표적 유형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아울러 개념미술가 조셉 코주스(Joseph Kosuth)가 예술 개념에 관한 단어들(‘meaning’, ‘idea’, ‘representation’, ‘object’ 등)을 사전 정의 그대로 확대 인쇄한 텍스트 기반 작업인 《Art as Idea as Idea》 (1966–1968) 연작은 텍스트 자체를 시각기호로 도치환 ‘변용 이미지’로 거론해 볼 수 있겠다. 또한 쉬빙(徐冰, Xu Bing)이 목판 인쇄술을 통해 가짜 한자를 가득 채운 커다란 천을 천장 아래 매달아 문화적 권위주를 비판한 <천상의 책(天書)〉(1987-1991) 연작도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1960년대 숫자만 가득 써나가면 지속(Durée)의 시간성을 탐구해온 로만 오팔카(Roman Opalka)의 캔버스 회화 작품인 <인생의 프로그램(Le programme de vie, Opalka 1965/1-∞)〉(1965-2011) 연작57)이나 온 카와라(On Kwara)가 특정한 작업 당시의 날짜만을 화면 가득히 써놓은 《Today》 혹은 《Date Paintings》 (1966-2014) 연작은 텍스트 자체를 시각기호로 도치환 ‘변용 이미지’라고 하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점선의 ‘이미지/텍스트 회화’는 이미지/텍스트 결합체이든 텍스트이든 두 경향의 작업 모두 텍스트를 이미지로 기호화한 제스처이자, ‘회화적 전환(pictorial transform)'을 실험한 작품 혹은 아이코노텍스트라고 할 만하다.

한편 ‘② 동물 회화’는 물고기, 새, 오리, 말, 호랑이, 코끼리와 같은 동물을 단순하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재현한 동물 이미지를 담은 회화를 지칭하고, ‘③ 식물 회화’는 튤립, 백합, 나리, 모란, 붓꽃, 과꽃, 꽃창포, 맨드라미, 이름 모를 풀꽃, 버드나무, 정원, 무성한 숲과 같은 식물 이미지를 같은 방식으로 재현한 회화를 지칭한다.

또한 ‘④ 풍경화’는 자잘한 들꽃이 가득히 피어난 풀밭이거나, 단풍이 붉게 물든 산을 멀리서 원경으로 포착하거나, 넓게 펼쳐친 푸르른 초원이 하늘과 구획되는 지평선을 만드는 자연 풍경을 탐구한다. 그녀의 풍경화는 때론 모란이 피어난 마당 뒤에 옛 한옥이나, 드넓은 자연 풍광 속에 정자(亭子)나 사찰(寺刹)과 같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풍경처럼 자연/인공 풍경을 탐구하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산을 배경으로 붉은 지붕을 한 이층 건물 앞 마당에 오리가 뛰어 노니는 풍경,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는 마당에 자리한 집 등 자연과 인공이 어루어진 자연/인공 풍경을 선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한편 ‘② 동물 회화’는 같은 종(種)의 동물 형상이 화면 가득 채워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곤충들과 때로는 다른 종의 동물들과 한데 어울리기도 한다. 노랑나비와 사슴 두 마리 또는 노랑나비와 말이 함께 있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많은 부분 ‘② 동물 회화’는 ‘③ 식물 회화’와 병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점선이 즐겨 그렸던 ‘말’은 말로만 존재하지 않고 버드나무의 녹음 속에 있기도 하고, 파란 싸리잎을 먹는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분홍 튤립과 백합뿐만 아니라 흐드러지게 핀 각종 봄꽃과 함께 등장한다.

김점선이 즐겨 그리는 대표적인 동물인 오리 또한 그러하다. 버드나무 녹음 속을 질주하는 오리의 행렬이나 분홍 튤립과 꽃밭 속의 오리 모습은 자연 풍경이 결국 각종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진 세상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종과 종의 만남은 작품 도처에서 발견된다, 개와 튤립, 버드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새,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자연 풍광 속을 유유히 걷고 있는 한 쌍의 학은 이러한 작품의 예가 된다.

‘③ 식물 회화’는 튤립, 백합, 모란, 붓꽃, 들꽃 등이 크게 클로즈업된 채 개별체의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백합과 나리, 맨드라미와 과꽃, 맨드라미와 과꽃이 한데 어우러지기도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여러 종을 하나의 화폭 위에 올린 오묘한 꽃밭의 풍경을 만든다. ,

흥미로운 것은, 김점선이 선보이는 동식물의 초상과 자연 풍경은 그가 어린 시절 체험했던 기억 속의 자연(과거)이기도 하고, 실제의 자연(현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그녀가 어린 시절 떠올리는 개성 고향 마을의 정원 속 풍경인 동시에 결혼 후 아치울 마을로 이주해서 맞닥뜨린 자연의 풍경이자, 정원에 가꾼 그녀만의 꽃밭이기도 하다.

한편, 그녀의 작품 속 집과 같은 인공의 풍경은 실제의 집(사실)이기도 내 마음의 집(허구)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들과 오리는 고향 개성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투영된 것이자, 아치울 마을에서의 가족과 따스했던 삶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점선의 작품 속 동식물의 회화 혹은 자연의 풍경은, 따스하고 명랑하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은 핍진하고 곤궁했던 경제 상황 속 마음고생했던 작가의 삶 속에 깃든 어두운 면모와는 달리, 그것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품어 안는다. 관람자와 어렵지 않게 따스한 정서적 교감을 하는 서정적, 감성적 회화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은 무엇보다, 마치 동시대 아동화나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상징주의나 나비즘(Nabiisme) 풍의 작품처럼 간결하고도 단순화된 형상과 더불어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야수주의(Fauvisme) 작품처럼 실제의 동식물의 특징을 극대화한 변형과 왜곡의 제스처, 그리고 중간 색조의 바탕 위에 평면화된 동식물을 표현한 강렬하고도 화려한 색상은 이러한 따스하고 명랑한 화풍을 진작해 나간다. 이와 같은 단순화한 형상, 화려한 색상과 더불어 동식물 이미지를 화면 가운데 배치하여 커다랗게 채워 넣거나 화면의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클로즈업하는 중앙 집중식 구도나 정면성의 화면 구성은 객관적 재현보다 작품이 지닌 주관적 해석을 강조한다. 따라서 김점선의 작품은 동식물을 ‘객관적 재현’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정서적 인상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를 통한 ‘주관적 해석’으로 접근하는 조형 방식을 전개함으로써, 가히 ‘단순화의 현대적 표현주의’라고도 부를 만하다.

이 글이 김점선의 작품을 미적 대상의 소재 측면에서 식물, 동물, 풍경으로 국한하여 범주화했듯이, 그녀의 작품 안에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데, 주변 사람들에게서 ‘괴짜, 또라이, 사이코’라는 말을 들을 만큼, 겉으로는 용감해 보이고 거침 없어 보이는 김점선이 실상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술을 들어보자. “내가 용감해 보이지만 상대를 어려워하는 게 있어. 대중을 대할 때는 막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줍어해. 영혼을 접하게 되니까. 사람 속에는 멋있는 게 다 있어. 그래서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왕이나 무명작가나 모두 어려워. 섬세한 떨림을 누구에게나 다 느끼기 때문이지.”58) 사회적이거나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으로 인해, 그녀가 사람들을 작업 안에 미적 대상으로 소재화, 주제화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게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점선이 아치울 마을로 이주한 후, 어느 날 작업실 창가에서 아차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직선 산행’을 감행했다는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가 다져진 산길을 따라 산행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맘속에서 계획한 직선 방향으로 무작정 산을 오르는 만용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직선 산행해 봤냐? 주어진, 단단하게 다져진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맘속으로 그린 길로 산행을 하는 거야. 그 길로 가다 보면 바위도 만나고, 비탈도 만나. 그래도 피해 가지 않아. 그러면 나뭇가지에 옷이 찢기고,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먼지가 묻고, 머리는 헝클어져 산발이 돼. 그렇게 길 없는 길을 갔다 내려오면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 아냐? 미쳤구나!”59)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로 산을 오르는 일은, 그녀가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미술 창작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는 작업 태도와도 연관된다.

‘⑤ 디지털 회화’는 오십견이 찾아와 붓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김점선이 노트북이나 테블릿 PC로 포토샵 프로그램을 통해 마우스를 붓처럼 사용해 그린, 그녀가 ‘디지털 그림’으로 부르는, 연작이다. 붓으로 그린 그림을 스캔한 후 포토샵으로 덧입히기도 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 위에 포토샵으로 디지털 회화를 덧입히기도 하는 방식60)이나 처음부터 포토샵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김점선의 ‘⑤ 디지털 회화’에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드물지만 몇몇 작품이 남아 있다. 그녀가 손을 번쩍 들고 만세하는 자화상을 자신의 미술 에세이집 『10cm 예술』의 표지로 그린 작품 〈만세〉61)는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삶 속 경제적 궁핍과 그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과 함께 사람들로부터 받은 치욕이나 고통을 떨쳐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자. / 만세를 부르면 회색빛 심장이 뚝 떨어져 나간다. / 어떤 치욕이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도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자. /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자. 몸에서 툭 소리를 내며 고통이 떨어져나간다. (중략) 만세를 부르면 힘이 난다. 치욕도 살비듬처럼 가볍게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62)

아울러 이 작품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창작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관련한 그녀의 각오를 살펴보자. “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돈이 생기면 물감을 사거나 필름을 샀다. 스스로는 자신을 늘 성실하고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미쳤다며, 퇴폐적이라며, 부당한 대접을 했다. 어릴 때 만난 선생님이나 교과서에서는 말했다. 인간은 실력을 쌓고 내면에 충실해야 하며 겉치레하는 것은 나쁘다고. 그런데 그것을 확실하게 실천하는 나를 왜 사람들은 백안시하는가.

그렇게 주장해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작품까지도 진지하게 봐주지 않았다. 미친 사람이 미친 짓을 한 찌꺼기로 생각했다. 정말 슬펐다. 슬퍼하면서도 나의 활동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 최대의 장점이자 생명력이다.”63)

김점선은 ‘⑤ 디지털 회화’는 오십견으로 붓을 들기 어렵게 되자 시작한 그림인 만큼, 우리가 앞서 살펴본 ‘② 동물 회화’, ‘③ 식물 회화’, ‘④ 풍경화’를 두루 아우르는 또 다른 버전의 작업이 된다. 또한 그녀의 ‘⑤ 디지털 회화’를 논하는 이 글에서 간과하지 말야할 것이 있다. 그녀의 디지털 회화는 오늘날 디지털 판화의 개념과 연동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그녀의 디지털 회화는 컴퓨터 내 가상의 공간에서 프로그램에 의해 완성되고 인터넷상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전시되고, 작가가 선정한 에디션을 통해 복제가 가능하여 대중에게 어렵지 않게 판매될 수 있는 에디션 아트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관, 전시, 판매에 있어서 대중성을 확보한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심정적으로 못내 불편했던 김점선의 입장에서, 이러한 디지털 회화는 블로그, 싸이월드의 등의 플랫폼을 통해서 관객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작품을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아울러 그녀에게 디지털 회화는 판매에 있어서도 저렴한 가격에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적절한 매체였다.

‘⑥ 화투 회화’는 어떠한가? 이 연작은 대중에게 친근한 화투를 소재, 주제화하고 재해석한 캔버스 작품을 통해서 대중과의 친밀한 소통을 꾀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연작은 많은 부분 디지털 회화 방식으로 제작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대중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더 친밀한 소통을 담보하기에 이른다. 전통적 소재를 유머와 위트로 재구성한 이 화투 회화는 마치 서브 문화와 대중의 B급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코리안 팝(Korean Pop)처럼 기능하면서 대중과의 접촉 지점을 더욱더 확장한다. 따라서 김점선의 작품에서 디지털 회화나 화투 회화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전보다 더 촉진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김점선에게 있어 ‘⑦ 복합 응용미술’은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가? 김점선은 소설가 박완서, 소설가 최인호, 시인 이해인, 교수 장영희 등 다른 저자의 책에 자기 작품을 마치 삽화처럼 게재하는 방식으로 콜라보 작업을 하거나,64) 동화 작가와 함께 내러티브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생산, 제공해서 동화책 콜라보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자기의 작품 이미지와 텍스트를 혼성한 자신의 미술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고, 암투병 중에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로 만든 동화책을 만들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다양한 작품 이미지를 사용해서 아트상품을 개발하는 일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수 양희은과 같은 대중예술인의 앨범 디자인뿐만 아니라 공연 무대를 꾸밀 디자인에 나서기도 하면서65) 상업 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이 오늘날 ‘상업 디자인(Commercial Design)’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신 비교적 오래된 ‘응용미술(applied arts)’이라는 용어에 관형어(冠形語) ‘복합의~’를 덧댄 ‘복합 응용미술(Composite Applied Art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녀의 이러한 작업이 기본적으로 타인이나 기획 상품의 디자이너로 기능적으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순수 예술을 소통과 유통 면에서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 장르 또는 타 주체와 협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점선의 ‘복합 응용미술’이란 다른 문화 예술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문학·공연·시각예술을 넘나드는 협업의 장을 만드는 상업 미술과 비상업 미술의 영역을 오간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김점선이 박완서를 필두로 다양한 문화, 예술계 인사와 교류하면서 그의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화했다는 것은 그의 문화생태적 네트워크 활동으로 평가할 항목이다. 암 투병으로 그녀가 타계한 후, “고인의 1주기 행사에 소설가 박완서, 시인 이해인 수녀, 피아니스트 신수정, 오은명 한뫼국악예술단 단장, 역사학자 이이화, 사진작가 김중만 등 고인과 친분을 쌓은 각계 인사들로 이뤄진 ‘김점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려 추모 행사를 열었다”66)는 점은, 당시 김점선의 문화, 예술계에서의 위상을 가늠해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일련의 작업은 오늘날 ‘문화생태플랫폼’을 지향하는 미술관이 요구하는 문화생태 네트워크 아트 혹은 융복합 예술이라고도 할 만하다.


VI. 에필로그

구리시는 구리시립미술관 설립을 준비하면서 ‘미래를 여는 미술관’, ‘문화생태플랫폼’을 기치로 내세웠다. 미술관 설립에 있어서 크게 대별되는 하드웨어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콘텐츠 중에서도, 지역 연계 작가를 그 대상으로 삼는 소프트웨어 콘텐츠는 매우 주요하다.

특히 미술관의 소프트웨어 콘텐츠는 《국제박물관협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가 규정한 미술관 정의와 연동된다고 할 때, 그 근원적 고찰이 무엇인지를 늘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ICOM은 2022년 8월 24일 프라하에서 열린 총회에서 새로운 미술관 정의를 채택했는데, 이 정의는 미술관의 전통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의 역할을 포괄적으로 반영한다. 이 정의에서는 여전히 미술관의 주요 기능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 해석’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도67) 미술관의 목적과 운영 원칙에 ‘즐거움, 성찰, 지식 공유, 포용성, 지속가능성, 지역사회 참여, 윤리적이고 전문적인 운영’과 함께 ‘교육’을 따로 포함한 바 있다.68) 이러한 기능이 미술관을 풀이하는 주요 키워드가 됨에는 이견이 없어 보임에도 이 또한 다른 개념이 유입되어 확장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미술관의 개념은 문화생태학의 네트워크처럼 확산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지속해서 변모하며 전개’69)되어 온 까닭이다.

지역의 문화, 생태적 환경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미술관의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지역 연계 작가 연구로부터 발원시킨다는 과제는 매우 주요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1983년부터 구리시 아치울 마을에 거주하면서 지역의 문화, 생태적 환경을 작품 속에서 주제화, 소재화해왔던 고 김점선의 활동은 구리시의 주요한 문화자산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점선의 작품은 자유 선언으로서의 예술을 표방하면서도, 구리시가 미술관 설립의 과제로 제안하는 문화생태플랫폼과 같은 오늘날의 생태학적 담론, 즉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공생과 더불어 융복합의 생태적 네트워크를 작품 속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해 왔다는 점에서 구리시립미술관의 주요한 콘텐츠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 발제문이 구리시립미술관을 준비하는 구리시의 입장에서 주요 작품 소장과 함께 김점선 작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가시화되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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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주

1) 이화우, 「구리시, 구리시립미술관 건립 학술포럼 개최, ‘미래를 여는 미술관 – 확장성 기반의 문화생태플랫폼’이라는 주제」, 『경기신문』, 2025. 9. 7.
2) 아래의 작가 이력을 통합, 정리했다. 김점선, 『10cm 예술』, 마음산책, 2002, & 서울아트가이드 인명사전 https://www.daljin.com/
3) 유나라, 「김점선의 동굴 속으로」, 『연세춘추』, 2007. 12. 10
4) 1969-1971미국 감리교 한국지부 소속 통역 및 번역사(이화여대재단), -서울아트가이드 인명사전 https://www.daljin.com/
5) 이근미, 「인물 연구 - 자유와 간결함을 추구해 온 김점선 화백 - 인생을 걸면 그림이 나온다」, 『월간조선』, 5월호, 2005
6) 송화산, 「소중한 삶과 인연에 관한 책 펴낸 화가 김점선」, 『여성동아』, 2006. 6. 16
7) 송화산, 위의 글.
8) 조우석, 「즐겨 읽기 - 그래, 나 자뻑이야, 그러니 예술하지」, 『중앙일보』, 2005. 12. 16.
9) 한상봉, 「아무 데서나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위클리서울』, 2019. 10. 10.
10) 김청연, 「책으로 맺은 인연 - 보시니 참 좋았다 글 쓰고 그림 그린 작가 박완서, 화가 김점선」, 『The Korean publishing journal,』, no.341, 대한출판문화협회, 2004, p.19.
11) 강수연, 「비목 작사가 한명희 선생 교유록⓺ - 말과 오리를 그린 천재 화가 김점선」, 『문학인신문』, 2025. 9. 7.
12) 위의 글.
13) 계수미, 「괴짜 화가’ 김점선 - 남다른 인생 & 암 투병 중에도 꺾이지 않는 치열한 예술혼」, 『여성동아』, 2008. 09. 18.
14) 김진, 「명작의 공간 틀을 깨고 자유 향해 내달리던… ‘순수’가 태어난 아치울 마을」, 『문화일보』, 2017. 3. 3.
15) 계수미, 앞의 글.
16) 강수연, 앞의 글.
17) 계수미. 앞의 글.
18) 위의 글.
19) 김청연, 앞의 글.
20) Mark Royden Winchell, Cleanth Brooks and the Rise of Modern Criticism (Charlottesville, London: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pp. 398-399.
21) 김성호, 『주류와 비주류의 미술 현장과 미술비평』, 다빈치기프트, 2008, pp. 102-103.
22) 유나라, 앞의 글.
23) 서상현, 「내 그림은 비싸도 5만원... 미술계 팔방미인 김점선」, 『매일신문』, 2008. 8. 30.
24) 박초롱, 「1년 365일 그림으로 산다」, 『이대학보』, 2006. 11. 20.
25) 당시 공모는 극사실주의와 관념미술 부문이었다. 서구의 1960년대 하이퍼리얼리즘과 개념미술을 지칭한다. 이러한 경향은 1970년대 국내 미술 현장에 도입되어 3차원 눈속임(Trompe-l'œil)을 지향하는 극사실주의와 대개 2차원 평면성을 지향하는 비물질화 경향의 관념미술이 유행했다.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의 미의식』, 재원, 1995. pp. 54-77. 참조.
26) 이근미, 위의 글.
27) 김진, 앞의 글.
28) 계수미, 앞의 글.
29) 이근미, 위의 글.
30) 계수미, 앞의 글.
31) 위의 글.
32) 김진, 앞의 글.
33) 유나라. 앞의 글.
34) 계수미, 앞의 글.
35) 위의 글.
36) 위의 글.
37) 김진, 앞의 글.
38) 박상철, 「오늘의 역사 - 소설가 박완서 별세」, 『메트로신문』, 2014. 1. 22.
39) 김진, 앞의 글.
40) 박아람, 「구리 아치울 마을 어떤 곳? 예술인 마을, 『아시아투데이』, 2021. 1. 30.
41) 계수미, 앞의 글.
42) 유나라, 앞의 글.
43) 김진, 앞의 글.
44) 김진, 앞의 글.
45) 위의 글.
46) 계수미, 앞의 글.
47) 김종근, 「토종 화가 ‘점선’의 그림 읽기와 아이리스」, 『아트코리아티비』, 2025. 2. 24.
48) 위의 글.
49) William Rubin and Frank Stella, Frank Stella, 1970-1987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1987), p. 14.
50) Umberto Eco, The Open Work, trans. Anna Cancogni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89), pp. 44–83.
51) Raman Selden and Peter Widdowson, 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Lexington: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93), pp. 52–53.
52) 이근미, 앞의 글
53) 민희정, 「한국의 초기 실험적 영상(映像): 영상의 수용으로부터 비디오아트로의 확장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9집, p. 161
54) 김효정, 「단순한 사람 김점선」, 『그들도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만든 여성들』, 현대미술포럼, 2025. & 서울아트가이드 연재칼럼-그 외 자료에서 인용. https://daljin.com/column/18538
55) 민희정, 앞의 글.
56) Alain Montandon, 'Presentation', in Iconotextes, sous la direction de Alain Montandon (Paris : Ophrys, 1990), p. 4.
57) Christine Savinel, “Opalka ou l'ethique de l'assignation” in Roman Opalka (Paris: Edition Dis, 1996), p. 14.
58) 계수미, 앞의 글.
59) 김진, 앞의 글.
60) 이무경, 「화가 김점선 - 모니터는 캔버스, 마우스는 붓이죠」, 『경향신문』, 2005. 3. 30.
61) 김점선, 『10cm 예술』, 마음산책, 2002, 표지.
62) 한상봉, 앞의 글.
63) 김점선, 앞의 책, pp. 36-37.
64) 강수연, 「만나고 싶었습니다-사람과 함께 언제나 청춘인 권용태 시인」, 『문학인신문』, 2023. 10. 13.
65) 박윤수, 「가수 양희은 35주년 무대에 화가 김점선 꽃밭 만들다」, 『여성신문』, 2006. 11. 17.
66) 김후남, 「화가 김점선을 생각하는 사람들’ 20일 추모 행사」, 『경향신문』, 2010. 3. 5.
67) Jane R. Glaser, Artemis A. Zenetou, Museums: A Place to Work: Planning Museum Careers (London, NY: Routledge, 2013), p. 8.
68) “ICOM approves a new museum definition”, August 24, 2022, ICOM 홈페이지 https://icom.museum/en/news/icom-approves-a-new-museum-definition/?utm_source=chatgpt.com
69) Jane R. Glaser, Artemis A. Zenetou, op.cit.,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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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가이드 인명사전
https://www.daljin.com/
서울아트가이드 연재칼럼-그 외 자료.
https://daljin.com/column/18538


출전/ 
김성호, 「아치울 마을과 김점선의 자유 선언으로의 예술」, 구리시 지역 연계 작가 연구 II , 『구리시립미술관 정체성 모색을 위한 학술포럼 – 미래를 여는 미술관! 확장성 기반의 문화생태플랫폼』, pp.28-46. 
(구리시립미술관 정체성 모색을 위한 학술포럼, 2025. 9. 13(금), 13:30~17:30, 구리시 여성행복센터 행복동 4층 대회의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