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3년도 더 지난 일이다. 1999년부터 근대 작가들의 드로잉을 본격적으로 수집하면서, 사간동에 있다가 평창동으로 이전한 G화랑, 인사동 A화랑, 부산 K화랑 등을 주로 출입했다. 2002년도 앞뒤로는 특히 인사동 A화랑을 자주 찾았다. A화랑 J대표는 이따금씩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근대기 드로잉 작품들을 귀신같이 구해와, 사무실 안쪽에 한두 점씩 걸어두곤 했기 때문이었다.



정규, <무제>, 1957, 종이에 펜, 수채, 17.2×23.7cm



그해 11월, 혹시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들렀던 차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희귀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圭’자 서명이, 왼쪽에는 붉은 ‘圭’자 도장이 찍혀 있는 채색과 세필로 그린 정규(鄭圭, 1923-71)의 연도 미상 소품 드로잉이었다. 판화도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데, 드로잉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전 다른 작품을 사고난 뒤라 돈이 부족했다. 한 가지 걱정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자유문학』 1957년 10·11월 합병호 표지


신사동에서 사간동으로 이전한 D화랑 P대표가 A화랑에서 이런 부류의 작품을 더러 구입해 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얼마 전에는 화분에 핀 꽃을 그린 황술조(黃述祚)의 유화 소품 한 점을 매입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매도한 적도 있어, 조금 더 결정을 미루다가는 왠지 이 그림도 거기서 곧 가져가 버릴 것 같았다. P대표는 근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고 정규의 작품을 매우 좋아해 목판화 작품인 <곡예>와 송혜수(宋惠秀) 구장의 소품 도예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었다.

나는 J대표에게 한 달 정도의 말미를 주면 값을 치르고 가져갈 터이니 무조건 작품을 팔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P대표가 A화랑을 방문해 이 작품을 매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대로 이미 작품이 팔렸다고 이야기하고 한 달을 기다려 주었기에 2002년 12월 6일, 마침내 이 작품은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자유문학』 1957년 10·11월 합병호에 실린 정규의 또 다른 삽화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2개월여의 기간 동안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소화(素畵)》전에 이 작품이 출품되었다. 전시 기간 중인 6월 4일, 미술사를 공부하는 A군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인으로부터 정규의 <무제>가 실린 잡지의 이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광섭(金珖燮)이 편집 및 발행인으로, 김용호(金容浩)가 주간으로 있던 『자유문학』1957년 10·11월 합병호에는 <무제>를 포함해 2점의 정규 드로잉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제>가 1957년작이며, 문학지의 삽도로 쓰인 내력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잡지나 신문에 삽화를 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문학예술』이나 『현대문학』 등 다수의 문학지에 근대미술사에 이름 있는 작가들의 커트가 많이 실려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김영덕(金永悳) 구장의 정규 판화 한 점을 더 소장하기도 했지만, 중간에 내 손을 떠나 이제는 오로지 이 드로잉 한 점만을 간직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경매에 출품된 그의 판화 한 점을 입수하려고 응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작품은 당시 낙찰자의 손을 거쳐, 지금은 내가 잘 아는 지인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