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재칼럼

한국큐레이터 열전

김준기

김준기 제7대 한국큐레이터협회장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2999 전시기획자 김준기(b.1968)는 부산시립미술관(2007-2010)을 거쳐 2010년부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석남미술상 젊은이론가상(2007)을 수상하였고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과 새로운 공공미술' 등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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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관의 전은자는 한국 공립미술관 현장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큐레이터다. 그는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사를 넘어 미술관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디렉터형 큐레이터로 활동해 왔다. 또한 학문적 연구와 현장 실무를 병행하며 제주 근현대미술과 이중섭 연구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이러한 연구 기반은 이후 미술관 운영과 학예 활동의 토대가 되었다. 전은자가 이중섭미술관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이다. 당시 미술관은 ‘이중섭’이라는 이름에 비해 소장품 규모와 운영 여건이 충분하지 못했다. 원화가 9점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는 이를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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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이보경, 전시에 대한 학적인 연구로부터

이른바 지역미술관이라는 틀은 종사자에게 이중의 과제를 부여한다. 어느 지역이든 이러한 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지방공무원으로서 한국의 지역미술관 종사자가 안고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이보경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귀국 후 미…

(21)인문과학 기반의 현장 큐레이터, 김재환

김재환박물관 종사자는 현실이나 현장과 거리를 둔다. 미술박물관도 크게 예외는 아니어서 사회현실이나 미술현장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것에 터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무릇 박물관 종사자란 현재진행형의 의제 설정과 쟁점화를 추구하는 당대의 활동보다는 이미 역사적 평가가 완결…

(20)분단과 아시아를 마주 한 그의 선택, 김선정

1990년대 초반, TV광고에 등장한 젊은 여성이 남긴 유명한 말 한마디. “난 내 선택을 믿어요.” 스카티 광고모델 김선정의 단언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큐레이터가 어떤 존재인지를 대중적으로 알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큐레이터 지망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을 신뢰…

(19)예술감독으로서의 큐레이터, 이영철

“오늘날 큐레이팅이라는 것은 전문화된 영역으로서의 미술에 국한 되지않으며,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협상, 저항, 조정의 과정을 거쳐 다중(Multitude)의 바다로 나가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다.”큐레이터 이영철의 사유와 실천은 이 한 문장에…

(18)장엽, 미술박물관의 소장품과 큐레이터정신

장엽의 지향은 ‘미술품을 다루는 박물관의 소장품 전문 큐레이터’다. 그는 만25년 전인 1990년 1월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소장품 3,400점이던 시절에 신입 큐레이터가 된 그는 2015년 현재 소장품 7,500점을 관리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학…

(17)박천남, 종 다양성의 미술관문화를 향하여

큐레이터 박천남의 관심사는 미술관문화의 종 다양성이다. 쏠림현상이 심한 한국의 문화지형에서 종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다. 그는 한국미술계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챙기려고 노력해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소외현상이다. 그가…

(16)이동석의 삶에 존경과 감사를

이동석(1964-2004)은 만 3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큐레이터다. 그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초창기 멤버로서 큐레이터가 당면한 한계와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놓고는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기억의 궁극은 한국사회가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한…

(15)최태만, 학문과 비평 그리고 전시

최태만격년제 국제미술행사 ‘창원조각비엔날레 2014’의 예술감독 최태만은 전시주제를 달그림자(月影)로 잡았다. 최치원의 월영대와 마산공단 여성노동자들의 달그림자, 그리고 오늘날 통합창원시의 앞바다를 비추는 야경 모두를 두루 꿰는 화두다. 그것은 도시의 역사성을 동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