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화면에 장미가 빼곡하다. 빼곡하지만, 정작 장미를 쉽게 알아볼 수는 없다. 패턴화하고 양식화된 화면 속에 장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위원소(모나드)가 동어 반복되면서 패턴을 만드는 것을 모듈 구조라고 한다. 작가의 경우에는 하나의 장미가 반복 열거되면서 하나의 패턴을 만든다. 얼핏 하나의 장미 같지만 사실 똑같은 장미는 하나도 없으므로 비정형 모듈 구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는 잇대어진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 여기서 사각형의 프레임은 아마도 존재의 집을 상징하
칼럼 외부칼럼
고충환
LAST PUBLISHED
ALL(1,053)
천경우의 작업은 사진과 함께 그 사진에 부친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목으로서 시간이 기입될 때도 있고, 퍼포먼스가 기입되는 경우도 있다. 시간과 퍼포먼스가 작가의 작업의 두 축이며, 그 두 축은 서로 별개의 영역으로서보다는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하나가 된다.…
작가 이영애는 언젠가부터 돌을 그리기 시작했다. 판화로 제작된 것인 만큼 엄밀하게는 찍었다고 해야 하나, 판화도 그림의 일종인 만큼 그렸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주로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채집된 피사체를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풍경적 요소가 강하다. 마른 꽃잎이나 낙엽…
Domestic Era. 신동원이 자신의 근작에 부친 이 주제는 가정시대를 뜻한다. 아마도 자신의 사사로운 경험과 신상에 연유했을 이 주제는 사실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개념에 닿아있고, 특히 문화사회학의 문제의식과 통한다. 무슨 철지난 여성지의…
역사현장(1999-2003), 벽으로부터의 반추(2004-2005), 길을 묻는다(2006-2007), 매화는 추위에 향을 팔지 않는다(2008), 날아라 닭(2009). 성태훈의 그동안의 화력을 대략 주제별로, 시기별로 분류해본 것이다. 여기서 역사는 시간의 메타포,…
김진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불현듯 반 고흐의 그림을 떠올렸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렇지만, 특히 반 고흐는 빛의 화가다. 사물의 표면에 던져진 빛의 편린들을 짧게 끊어진 중첩된 붓질로 표현한 것이다. 어둠이 사물의 형태를 삼킨다면, 빛은 사물의 형태를 휘발시킨다. 반 …
책은 언어의 집이다. 그림 또한 언어의 한 형식이란 점에서 화집 등 미술책 역시 이 정의에 포섭된다. 때로는 문자 텍스트의 형태로, 더러는 이미지 텍스트의 형태로 어떤 의미를 불러일으키고 상기시키고 암시하는 체계며, 사물 자체를 직접 지시하는 대신 사물을 개념으로 치환…
붉은 노을과 붉은 오염. 세상을 온통 암실 속 정경처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아름답다. 문명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장관이다. 그런데 그 장관이 대기오염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 장관 중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던 구름이 알고 보니 산업현장에서 뿜어낸 연기였다고 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