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 『앙가쥬망 기록일지 1975-2000』, 20×13cm, 115쪽, 김정 기증
내지. 1975.10.11- 11.1 일지


75.11.8
오후 6시 30분 장(욱진)선생 댁에서 생세계의 주제하에 고사를 지냄. 참가자는 회원전원이었으며 그 밖의 동석자는 석도륜, 이춘기, 오경환 등이었으며 최관도 씨가 보이지않음.
한국의 막걸리, 돼지머리 등으로 흥을 돋우었음. 이 자리에서 장선생은 춤을 추었으며(곧 끝났지만), 장선생님 부인 이여사도 춤을 추었다. 한편 김정도 서장(序章)에 춤을 추었다. 그 밖에 토의된 사항들 없었음. 이만익씨 부인이 한국 고유의 춤을 추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75.12.22
4월말부터 5월초 문헌화랑에서 소품전 예정. 12월 30일. 안재후 선생 집에서 6시 시작.
Slide 시사회 가질 예정.
렘브란트. 레오나르드 다빈치, 부뤼헐. 3인의 작가를 중심으로 한 대화 개최 예정.

1981년 6월 5일
앙가쥬망 20년전의 1부 전시가 인사동 세종화랑에서 (5시~6시) open 됐다. … 전시장에는 김정, 이춘기, 이만익을 위시해 장욱진 선생의 콧수염까지 합치면 거의가 콧수염을 기른 화가들이 전시장을 메우다 시피했다. 우연히 모이게 됐는데 이 광경을 본 최경한 선배가 「이거 콧수염들이 한자리에 모이니까 무슨 대회같다, 면서 「콧수염 없는 사람을 골라볼 정도로 열세에 몰렸는데 … 하하」라고 말하자 장내는 웃음 꽃바다. 장선생이 이례적으로 조용한게 어째 이상하게 느꼈다. 아마도 건강이 안좋은 모양 같다.


이 자료는 서양화가 김정(1940- )이 1975년부터 2000년까지 기록한 서양화가 그룹 ‘앙가쥬망(Engagement)’의 친필 활동일지이다. 앙가쥬망은 1961년 9월 23일부터 29일까지 국립도서관화랑에서 김태, 박근자, 안재후, 최경한, 필주광, 황용엽 6명이 창립전을 개최하면서 시작되었으며, 2026년 67회전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미술 동인이다.

황용엽의 자전에 따르면 앙가쥬망은 “그룹전이 거의 없던 시기에 이념이나 구상, 추상을 떠나 각자 자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경비도 줄이고 친목을 꾀하자는 취지”로 출발하였으며 전시회 명칭으로 ‘약속’, ‘유대’ 등의 뜻을 지닌 불어 ‘앙가쥬망’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설명했다. 김태, 안재후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홍익대 출신인 황용엽이 고향 친구로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으며 당시 출신학교와 상관없이 돈독한 친분으로 각자 자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창립 당시를 회고했다. 미술평론가 이구열도 21회전 서문에서 1회전을 회고하며 “1960년을 전후로 기존의 가치관에 반기를 든 새 세대의 창조적 열기” 가운데 창립된 앙가쥬망의 구성원들이 모두 “완전 추상 또는 그 경향의 작품들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작가적 기질로는 “온건한 자기충실파들”이었다고 평했다.

각자의 작업을 존중하며 순수한 미술동인으로, 6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2회전부터 문학진, 윤형근, 심죽자, 이용환, 이만익, 장욱진, 김정 등이 합류하였고, 이후 지금까지 80명이 넘는 작가들이 거쳐갔다. 특히 장욱진에게 앙가쥬망은 유일하게 참여한 미술동인이었다. 그는 5회전부터 자청하여 참여한 이래 그룹의 상징적인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료는 1969년 앙가쥬망에 입회한 김정이 친필로 일기처럼 기록한 자료이다. 스케치 여행, 전시 회의, 친목 모임 등 당시의 생생한 기록들은 한국 미술계를 지탱해온 작가들의 미술 활동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