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朝鮮藝術雜誌 朝』 제1권 제2호
조선예술사, 1926.6.25, 27×19cm, 81쪽
우) 내지. 서양화부 특선작
나혜석 〈천후궁〉(위), 이창현 〈정물〉(아래)


야마다 신이치 심사평
천후궁(天后宮) — 나혜석(羅蕙錫)씨
조선 여성계의 선구자로서 마땅히 경외를 표할 뿐 아니라, 이 그림을 작년의 「낭낭묘(娘娘廟)」와 비교할 때 그 놀라운 진보에 더욱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 그림의 성공은 오로지 구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제 바람을 말하자면, 자주색을 대신할 색채 연구를 한 가지 더 해주었으면 한다.

탁상정물(卓上靜物) — 백남순(白南舜)씨
내가 아끼는 제자이다. 진지한 연구가이며, 청정함과 겸허함이 이 사람의 아름다운 인격이다. 그림은 아직 독자적인 경지에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태도를 오래 유지한다면 반드시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미술, 문예, 음악 등을 다룬 종합예술잡지로, 1926년 5월 1일 창간호가 발행되었으며 같은 해 6월 25일 제2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잡지는 재조선 일본인 다다 기조(多田毅三)와 시인 우치노 겐지(内野健児)가 1926년 설립한 조선예술사(朝鮮芸術社)에서 발행하였다. 다다 기조는 『경성일보』의 미술 기자이자 화가로 활동하면서 잡지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하였다.

『朝』는 미술·문예·음악의 세 부서로 구성되었으며, 미술부는 다다 기조, 문예부는 우치노 겐지, 음악부는 오바 유노스케(大場勇之助)가 담당하였다. 우치노는 대전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중 1922-25년까지 일본어 근대시 문예지 『경인(耕人)』을 발행한 바 있으며, 오바는 경성공립고등여학교 등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하였다. 표지와 삽화 등의 장정은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가 담당하였다. 아사카와는 조선 백자와 민예·공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일본에 소개한 인물로, 『朝』에서도 장정뿐 아니라 조선의 도자와 공예, 「선전잡감(鮮展雑感)」 등의 평론을 기고하였다.

조선예술사 청규(淸規)에는 조선예술잡지 『朝』를 월 1회 발행하고, 단행본 출판, 미술전람회, 문예강연회, 음악연주회를 개최하며, 『朝』에는 신시, 단카, 판화, 작곡을 투고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발간 취지를 살펴보면 “우리 조선에 있어서 예술은 등한시되어 왔다. … 과거의 도기, 건축, 회화, 조각, 가요, 음악, 조선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이것들에 토구(討究)의 손을 뻗어 감상자의 눈을 열고 조선이 가진 아름다움(美)을 맛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미의 대지에서 동양의 예술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히며 조선의 과거 예술과 미래 예술을 건설함에 동서양의 예술을 취하여 이 조선 땅에서 조선의 미(味)를 기조로 “조선예술잡지라는 미증유의 일”을 시작한다고 설명하였다. 조선 문화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주체를 일본인으로 상정하는 식민지적 시각이 드러난다.

2호는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집호로, 특선작 도판과 입선작 목록, 「선전기(鮮展記)」가 게재되었다. 분야별 작품평 가운데 서양화가이자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던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가 백남순의 작품을 평하면서 “내가 아끼는 제자”라고 언급한 점, 백남순 입선 일람에 야마다 신이치에게 사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 밖에 1926년 4월 무너진 영추문을 애도하는 건축사학자 후지시마 가이치로(藤島亥治郞)의 「영추문을 애도하며」등이 수록되었다.

『朝』는 초기 종합예술잡지로서 1920년대 조선의 미술 담론과 일본인 예술가들이 조선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朝』는 단명하였지만, 조선예술사는 1928년 종합예술잡지 『ゲラ(게라)』 발행을 시작으로 회화연구소와 조선창작판화협회를 조직하고, 『すり絵(스리에)』 발행과 전시 개최 등 창작판화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