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의 발자취와 학문의 연원:
구국의 고고학적 실천에서 인류학적 통찰로
최정필 세종대박물관장의 학문적 지향과 문화유산을 향한 헌신의 원점은, 신라사 연구 및 경주 지역 문화유산 발굴·보존의 거목이자 선구자였던 부친, 석당 최남주(石堂 崔南柱, 1905-80) 선생으로부터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다. 석당은 1926년 경주박물관을 있게 한 ‘경주고적보존회’에 투신한다. 같은 해에 스웨덴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황태자(Gustaf VI ADOLF, 1882-1973, 고고학자)와 함께 서봉총(瑞鳳塚) 발굴에 참여해 신라 금관을 세상에 알렸으며, 1934년에는 ‘남산신성비’를 발견하여 신라사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업적으로 우리 민족 문화유산 발굴과 보존에 선구자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석당은 일제강점기 경주 남산의 골짜기 곳곳에 숨겨진 수많은 불탑과 절터를 조사해, 남산이 신라인들이 염원한 불국토이자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임을 밝혔다. 그의 끈질긴 남산 탐구는 후학들의 불교 연구와 일반인들의 남산 유적 답사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었으며, 남산은 오늘날 세계유산으로 등재(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되어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신라의 얼을 찾으려는 석당의 집념은 평생 이어졌다. 척박하고 혼란스러운 격동기에도 수많은 유적 현장을 직접 누비며 문화유산 수호와 역사적 진실 규명에 일생을 바친 선친의 삶은 어린 최정필에게 거대한 거울이 되었다.
ICOM 국제박물관협의회 총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한 최정필(2005)유년기부터 그는 부친을 따라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며 민족정기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역사와 유물 앞에서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한다.”라는 선친의 엄정한 태도를 지켜보며 자란 최정필은 자연스럽게 역사학과 고고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학업을 마친 그는 한국 선사고고학 연구의 이론적·실증적 토대를 다지며, 유물의 형태를 분류하고 제작 시기를 밝히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힘썼다.
미국박물관협회 총회에서당시 협회 회장 포드 벨(Ford Bell)과 최정필(2009)
이러한 연구 관점은 박물관의 전시와 해설로도 이어졌다. 유물을 종류와 시대에 따라 배열하는 것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믿음, 세계관을 함께 드러내고자 했다. 그에게 유물은 과거의 물건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 사유를 전하는 매개였다. 따라서 전시 역시 개별 유물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그 유물이 속했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이렇듯 그의 학문과 실천을 뒷받침한 것은 온전히 부친 석당 최남주에게서 물려받은 역사에 대한 소명 의식이었다. 격동의 시대에 유적 현장을 누비며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지켜낸 부친의 삶은 그에게 학자로서의 책임과 자세를 일깨워 주었다. 석당이 현장에서 문화유산을 수호하는 데 헌신했다면, 후대에서는 그 뜻을 현대 고고학과 인류학의 이론·방법론으로 전이되어 연구와 박물관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선대의 실천은 이처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대중과 나누는 작업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대학 박물관을 넘어 한국 박물관의 지평을 넓히다:
학문과 행정의 조화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최정필은 대학 박물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대학 박물관이 소장품의 단순한 보관고에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되며, 대학생과 일반 대중이 역사의 숨결을 직접 마주하고 호흡하는 ‘살아있는 교육과 연구의 현장’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했다. 학계와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쌓아온 그의 풍부한 경륜은 자연스럽게 공공 영역으로 확장되어 한국 박물관 행정의 현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한국박물관학회 회장으로 부임해서는 국내 박물관학의 기틀을 다지고 전문적인 학술 교류의 장을 넓히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어 문화관광부 박물관·미술관 학예사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오랫동안 맡으며 우리나라 학예사 제도의 정착에 기여했다.
또한, 최정필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이어갔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장을 맡아 한국 박물관계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세계 각국의 박물관 연구자 및 실무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끌었다.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의 박물관 간 협력을 위해 아시아·유럽박물관네트워크(ASEMUS) 창설에 적극 참여하고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두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좌) 경주 서면 방내리 신라 고분 발굴 현장에서 석당 최남주 선생(1969)우) 스웨덴 동양박물관 재개관 기념식에서 스웨덴 국왕 내외와 최정필 (2004)
특히 그는 스웨덴과 긴밀한 관계를 쌓으며 스웨덴 동양박물관의 한국관 설치에 기여하는 등, 양국의 문화 교류와 우호 증진에 오랫동안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스웨덴 왕실로부터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어 그는 대학 행정의 최전선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세종대 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과 학사 제도의 선진화에 온 힘을 쏟았다. 제자들이 이론적 지식에만 안주하지 않고 현장 감각과 인류학적 안목을 고루 갖춘 전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지도 교수의 소임을 다했다. 특히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재단의 경영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학자의 엄밀함과 행정가의 유연한 리더십을 겸비한 그의 궤적은 척박했던 국내 박물관 행정의 틀을 다지고 전문성을 공고히 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다방면의 헌신은 박물관 행정의 현대화를 이끈 주역으로서 그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였으며, 학문과 현장이 괴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선순환의 틀을 완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평생을 학문 연구와 제도 개혁의 최전선에서 보낸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 한국 박물관 문화의 토양이 되어 후배 박물관인들과 연구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귀감이 되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의 역사와 디아스포라를 심도 있게 조명하는 등 인류 보편의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다.
“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을 가두어 두는 수문장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역사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오늘날 한국 박물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겨누고 있다.
- 최정필(崔楨苾, 1945- ) 경주 출생. 고려대 사학과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 인류학 석·박사.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 세종대 대학원장, 한국박물관학회 회장,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장,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역임. ‘북극성 훈장(Royal Order of the Polar Star)’(스웨덴 왕실, 2010) 수훈, ‘자랑스런박물관인상’(한국박물관협회, 2018) 등 수상. 『속오리진』(세종서적, 1999), 『하남시 교산동 문화유적고』(세종연구원, 2000), 『고고학과 한국상 고사의 제문제』(주류성출판사, 2010), (공저)『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 학예사자격제도에 관한 평가 연구』(한국법제연구원, 2009), 『아메리카 인디언, 끝나지 않은 문명의 여정: 서사로 기록된 생존과 부활의 디아스포라』(주류성, 2025), 「신진화론과 한국상고사 해설의 비판에 대한 재검토」(한국상고사학회, 1994), 「21세기를 대비한 박물관의 국제화 제문제」(한국박물관학보, 2003), 「신석기 연구의 제문제」(한국고대학회, 2005)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저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