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국도 40도 넘는 기온을 기록했다. 이러한 이상(異常)이 앞으로는 일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술 전시장이 대부분 6시쯤 문을 닫기에 가장 더운 시간대에 움직이게 된다. 해가 져도 도심을 뒤덮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전시장 동선에 따라 여기저기 이동해야 하는 이의 발을 무겁게 한다. 뇌와 장기에 영향을 준다는 열에 의한 몸의 과부하는 작업도 관람도 무력화시킨다. 봄가을이 없어지는 시대, 전시 정보를 쥐고 여기저기 보물찾기처럼 다니던 시대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닐지. 발길 닿는대로 가다 계획에 없던 전시도 보는 행운도 줄어들고, 미디어 기기로 실제 관람을 대신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AI를 이용하면 마치 전시장 사진같이 연출된 장면도 가능해서 때로는 사진 몇 장 남기고 사라지는 전시에 대한 의욕이 저하되는 것은 아닐지. 정보기술의 발달로 작가나 작품에 대한 내용을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정작 몸을 써야 하고 물질을 다루는 미술작품 제작의 관행상, 솜씨나 기법, 체험 등의 약화는 피하기 힘들다. 정보기기가 몸에 밀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듯이, 몸의 활동을 도와줄 수 있는 에너지 혁명이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도시에서는 맹렬하게 불타는 한여름 땡볕 대부분은 그냥 사라지며,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한 에너지가 또 필요하다.
이영희, <crack>, mixed media, 가변설치, 2025, 온에어갤러리 전시장 전경뒤집히고 찢겨 있는 대지는 이상(異常)이 일상이 된 현실을 표현한다.
위기가 상시화된 세계는 서로 조밀하게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현재 거의 3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쟁은 에너지 위기를 격화시킨다. 제국은 겉으로 여러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자국의 에너지 이익을 위해 분쟁을 지속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의)전쟁의 전리품으로 석유를 언급’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제거한 뒤 베네수엘라 원유 산업을 장악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아 고통받는 나라들에게 미국산 원유를 구입하라’고 했다.(중앙일보, 2026.4.7) 선진국의 원형이었던 유럽에서 지난 여름 기후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또한 에너지 확보와 관련된다. 에너지는 공공부문의 투자를 통해야 가능한 기반 사업이다. 데이터 센터 등 AI에 필요한 시설은 엄청난 전력과 물이 필요하며, 필수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 한 켠은 폐허가 되고 있다, 「AI, 가려진 환경 영향을 묻다③: 김혜린 기후자원정의센터 아크 대표」(뉴스펭귄, 2026.7.24)는 ‘반도체와 서버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리와 니켈, 리튬, 코발트와 희토류같은 희귀광물을 채굴하고, 광물 채굴 지역 노동자와 데이터 센터가 들어선 지역 주민, 그들의 후손과 수많은 비인간 생명에게도 부담이 나눠진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어떤 AI를 원하고 어느 정도까지 자원을 사용할 것인지, 사회가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는 마치 무균실처럼 깨끗하게 운용되는 듯하지만, 이전의 굴뚝 산업처럼 탄소배출 등 오염원 대신 또 다른 에너지가 무한 공급되어야 하며, 이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불일치를 전제로 한다. 에너지 공급망이 집중되고 동질화될수록 위험과 그에 따른 비용도 커진다. 호르무즈 해협보다 더 좁은 단 하나의 통로만을 남겨두는 것이 제국의 목표다. 여러 통로가 하나로 집중되어가면 약자의 입지는 더욱 악화된다. ‘미국 상무부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최신 AI 모델의 글로벌 접속을 차단하며 비상정지 버튼 누르자 전세계 AI가 멈췄다’(한국일보, 2026.7.12)는 소식은 정보기술의 독점이 결국은 무기화될 것을 예고한다. 예술 또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차원에서 두루 에너지가 투입되는 분야다. 여러 에너지를 모아서 만들어진 작품의 물적 차원은 다양한 채널의 소통 과정을 통해 에너지로 변하고, 이는 작가로 하여금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물질을 제공해 준다. 예술 또한 필요와 낭비 사이에서 소비되는 정보일 수 있지만, 세계를 무한 경쟁과 전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공급과 수요 시스템의 의도적인 획일화와 그로인해 가능한 물신주의다. 예술은 수많은 우회로와 대안의 길을 따라 주고받는 소통을 극대화함으로서 물질과 에너지의 병목현상을 낳는 독점적 체계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