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관 제도에서 큐레이터는 종종 스펙터클한 전시를 무대 위에 올리는 연출가로 소비되곤 한다. 매번 새로운 담론과 스타 작가를 호명하고, 화려한 개막과 막을 내리면 모든 것이 휘발되는 이벤트의 연속. 과연 미술관은 새로운 문화상품을 쏟아내는 소비의 공간이어야 하는가? 여기, 끊임없이 새로움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전시장 너머로 시선을 돌려 미술관이라는 제도 자체의 심장부를 들여다보는 한 큐레이터가 있다. 2018년부터 대전시립미술관의 현장을 지켜오며 연구와 수집, 보존과 전시, 교육과 공공성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내는 학예연구사 우리원이다.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미술사와 미술경영을 전공한 후 대전에 뿌리를 내리고 큐레이터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천착해 온 큐레토리얼 실천은 세 갈래의 물줄기를 이룬다. 과학도시대전의 맥락을 동시대미술의 언어로 전환하는 일, 지역미술의 계보를 실증적으로 추적해 공공 컬렉션으로 안착시키는 연구, 그리고 미술관의 접근성과 배리어프리를 통해 제도의 문턱을 낮추는 실천이다. 언뜻 각기 다른 길처럼 보이는 이 궤적은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뮤지올로지 의제로 수렴한다.

우리원의 실천에서 두드러지는 축은 ‘대전발 과학예술’의 방법론적 쇄신이다. 2018년부터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에 참여해 2024년 기획총괄을 맡았던 그는, 외지에서 기성의 명성을 빌려오는 관행 대신 미술관 내부의 학예 역량과 집단 지성에 주목했다. 20년간 축적된 아카이브를 다시 펼쳐 들며 “우리가 과학예술을 하는 이유가 단지 대덕특구라는 인프라 때문인가?”라는 도발적인 자기반성을 던졌다. 그에게 과학은 기술적 스펙터클이나 신기재의 도입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질문하는 또 다른 사유의 양식이다. 대전발 과학예술의 20년 역사에서 이러한 발상의 기획은 새로움을 줄이고도 참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공미술관이 과학도시 도시정체성에 집중하면서 구축한 성과를 뮤지움다움으로 재구성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 전담 조직이 따로 없는 구조적 특이성과 빠듯한 예산 속에서도, 그는 안팎의 한계점을 탓하기보다 20년간 축적된 사람과 기록, 시행착오라는 ‘내부의 자원’을 직조해냈다.

소장품과 지역미술 연구를 중심으로 대전의 로컬리티에 집중한 우리원은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고, 예술적 자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그 바탕 위에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꽃피우고 있다. 게다가 청년미술에 주목한 그의 기획은 특정 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대전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한다. 그의 시선은 ‘행정적 출신지’로 구획된 협소한 로컬리즘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동과 관계, 연대 속에서 문화적 공동체로서 지역성을 재검토하고, 아카이브가 작품의 수집과 기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구조를 구축하는 일이다.

큐레이터 우리원 정신의 핵심은 ‘발견과 해방’이다. 미술관 수장고와 지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가치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발견’이라면, 그것이 박제된 지식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의 다원적인 맥락 속에서 새로운 호흡을 얻도록 관계망을 열어주는 일이 곧 ‘해방’이다. 수어와 쉬운 언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감상과 동선 연구 등 배리어프리 프로젝트를 행정 서비스가 아닌 전시기획의 핵심적 조건으로 다루는 것 역시 미술관의 공공성을 확장하려는 그의 최근 시도다.

“발견하고, 해방하고, 연결하고, 다시 축적하는 것.” 그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지식과 관계, 기술과 사람이 다음 실천의 자양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생태적 순환이다. 전시를 만들고 지우는 소모적 질주를 멈추고, 미술관의 안과 밖, 과거와 미래를 단단한 고리로 연결해 내려는 우리원의 실천은 공공미술관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 우리원(1985- ) 뉴질랜드 오타고대 미술사·경영학 학사. 영국 소더비인스티튜트 현대미술·미술경영 수료. 뉴질랜드, 호주 중심으로 활동 후 귀국,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재직(2018- ). 《미래저편에: 대전 1993/2023》(2023),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2024),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최종태》(2025) 등 전시기획. 컬렉션 중심 지역미술사 전시연구 프로젝트 「지역미술 조명사업」, 청년미술 프로젝트 「DMA 캠프」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