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이 그림은 왜 고종을 거울 앞에 세웠을까. 대한제국의 주권이 열강의 압박 속에서 크게 흔들리던 시기, 그는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군주로서 책임을 되새기고 있었을까. 혹은 후대의 시선이 투사한 무력감과 자기연민의 이미지였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거울을 본다는 행위가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아시아에서 거울은 외모를 비추는 도구를 넘어 자신을 경계하고 역사를 성찰하는 비유였다. 당 태종이 구리거울과 역사, 사람을 각각 자신을 바로잡는 거울로 삼았다는 삼감지계(三鑑之戒) 고사는 군주에게 성찰이 곧 통치의 조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서양에서도 나르키소스 이야기처럼 실체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성찰하게 하거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처럼 거울을 통해 화면 안팎의 시선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울은 내가 믿고 싶은 모습과 실제의 나 사이의 간격을 드러낸다.
이 그림을 본 뒤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실을 찾았다. 황제국 선포와 근대화, 외교 활동, 국권 침탈과 저항의 역사를 따라가던 중 가장 오래 발길을 붙든 것은 화려한 〈황제어새〉도, 〈데니 태극기〉도 아닌 〈한국병합기념장과 증서〉였다. 일본이 대한제국 병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912년 한 관리에게 기념장과 함께 수여된 증서다. 기념장 앞면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 나뭇가지와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오동나무 가지가 교차하고, 그 위에 국화문이 놓여 있다. 뒷면에는 ‘한국병합기념장’과 함께 1910년 8월 29일, 곧 경술국치의 날짜가 새겨져 있다. 한국인에게는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날이었지만, 일본 제국에는 영토 확장을 기념하는 성과였다. 한 나라의 소멸이 금속과 직물, 문장과 증서로 정갈하게 가공되어 누군가의 공적을 증명하는 표창이 된 것이다.

자주와 저항의 서사가 뜨겁게 울려 퍼지는 전시장 한가운데서 이 유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제국주의의 폭력이 얼마나 냉정한 행정과 정교하고 질서정연한 도상으로 포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고종의 거울 그림과 이 유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거울은 자신을 낯선 타자로 바라보게 하고, 병합기념장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역사의 차가운 표정을 직시하게 한다. 역사를 마주할 때는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도 필요하다. 박물관은 과거의 사물을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그것을 해석하는 현재의 시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거울 속 고종을 바라보는 일은, 그 시대를 해석하는 오늘의 우리의 시선까지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