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트라이보울은 이름만큼이나 특색있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둥근 반원형의 역삼각형 건물 2동이 겹쳐 쌍둥이의 자태를 드러낸 모습이 더없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가히 인천 송도의 명물이다. 
트라이보울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김범수×이탈 2인전: 행복의 나라로》(7.17-9.30)를 봤다. 이 두 작가는 인천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트(이탈)와 현대조각(김범수)의 얼굴들이다.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실험성과 새로움을 향한 의식이 인상적인 중견작가들이다. 두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든 인상은 대체로 난해하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대중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지만, 그러나 트라이보울 전시장이 풍기는 현대적인 외관이나 분위기에는 썩 잘 어울리는 작품들이다. 건물의 실험성과 작품의 실험성이 어우러지면서 관객을 흡인하는 힘이 뿜어져 나온다. 


김범수, 〈의미의 교란자Ⅹ〉, 2025


과연 ‘행복의 나라’는 어디일까? 어디에 있을까? 아니, 대체 있기는 한 것일까? 이 전시는 이처럼,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잠시 기획자의 발언을 들어보자.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그것은 누구에 의해 정의되는가. 그것은 도달할 수 있는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이식한 부풀려진 환상일까.”(박석태 미술비평) 이러한 질문은 전시기획자라면 의당 해볼 수 있는 것이리라. 이른바 행복의 실제와 가상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 이러한 담론은 AI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시의적절한 것일 수 있다. 주지하듯이 AI는 가상의 판타지 구현에 더없이 훌륭한 매체일 수 있겠고, 우리에게는 그렇게 구현된 세계에 대해 실제와 가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질문처럼 ‘유토피아’인지 ‘부풀려진 환상’인지 ‘행복의 나라’에 대한 정의가 어려울 때, 우리는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심리적 아노미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이 전시는 이에 대해 ‘위험하다’라고 붉은 경고등을 켠다. 

‘행복’이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개개인이 모여 이루는 ‘행복의 나라’ 역시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몸 안에 있는가, 몸 밖에 있는가? 인간과 사물을 소재로 한 김범수의 조각이 이 부분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눈이 없고, 사지가 녹아 없어지거나, 반인반수의 기괴한 형상을 통해서. 김범수가 레진으로 빚어낸 몸의 언어는 미학적으로는 그로테스크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기괴하거나(〈무엇임, 2022〉), 명상적인 것(〈머리들, 2025〉), 키네틱(〈카타스트로프의 점, 2026〉) 등등 다양하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인형, 마네킹, 동물 같은 형상들을 파편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중요한 방법론으로 쓰는데, 이것은 신체적 위계질서를 교란시킴으로써 몸정치학적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 역시 마음의 영역을 다루는 분야라는 점에서 김범수는 행복의 가상세계에 정곡을 찌른다. 


이탈, 〈K군찾기〉, 2019


오랫동안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 등 실험미술의 세계에 빠져 활동해 온 이탈은 올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주최한 작가상을 수상,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탈에게 있어서 디지털, 아날로그 등 각종 미디어는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개진하기 위한 수단이다. 백열전등, 센서, 코딩시스템, 카메라, 컴퓨터, 주사선, 전기제어장치 등등 다양한 매체와 기술들이 각종 오브제, 설치와 결합해 이탈의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 전파를 돕는다. <나는 너를 모른다>(2025), <가로세로>(2026) 등의 작품이 이 범주에 속하는 수작(秀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