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작품7 <익명의 땅(G#202607)>, 2025, 캔버스에 흙과 수묵, 200×640cm


채성필은 끊임없이 자연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말하자면 자연이 그의 작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채성필은 늘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자연이 내는 발신음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가령 거대한 푸른 파도가 일렁이며 내는 소리를 비롯하여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 가운데를 거센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것 같은 깊은 이랑들과 관련된다. 채성필은 사물이 내는 소리를 잘 듣고 사물 특유의 표정을 마음속에 잘 담아둔다. 그런 자연의 풍경과 사물의 언어들이 채성필의 몸속에서 육화돼 나타난 것이 그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작가 자신도 잘 모르는 이 미적 숙성의 과정은 신비한 창작의 메카니즘과 연관돼 있다. 

요즘 한창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AI와 관련시켜 볼 때, 자연을 소재로 물질 위주의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는 채성필은 그 반대급부로 오히려 작가로서의 존재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크게 봐서 최신의 첨단 기계문명과 흙과 광물질 위주의 전형적인 아날로그의 대결이라고도 불 수 있는 채성필의 작업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토대인 자연과 대지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과 같은 가상의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어느 날 인류를 덮친 가상과 인공의 거대한 파도(마치 채성필의 거대한 푸른색 파도 그림 < 물의 초상> 연작처럼)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는 AI 작품들을 양산함으로써, 진리의 토대로서의 대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나의 손안에 있는 이 한 줌의 흙이야말로 사물의 생생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인 것이다. 채성필의 작업이 날이 갈수록 세계의 위기를 예감케 하는 가상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의의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 자연과 대지에 대한 환기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두어진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채성필 흙 그림전: 익명의 땅》전(4.28-6.14)은 황금빛 흙 그림이 유난히 존재감을 드러낸 대작 위주의 전시회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전 역량과 무게가 전시로 <익명의 땅> 연작에 담긴 대지의 존재감이 두드러져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4년 전, 가나아트에서 열린 초대전 도록에 쓴 서문에서 나는 채성필의 작업이 지닌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조합작품1 <대지의 몽상(G#202601)>, 2025, 캔버스에 흙과 수묵, 300×300cm


“채성필은 이제까지 그가 일군 예술적 성과만으로도 세계인의 미적 감성을 녹일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재능을 겸비한 작가이다. 천연의 흙을 사용하는 그의 작업은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단색화(Dansaekhwa)’의 열풍에 힘입어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그의 작업을 이렇게 보는 이유는 재료와 캔버스를 다루는 ‘채성필 고유의 방식’에 있다. 즉, “그는 어떻게 해서 안료를 얻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그는 캔버스를 어떻게 다루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와 같은 예술철학적 질문들과 연관돼 있다.” 

흙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채성필의 작업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할만치 몸의 활동 반경이 크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양손을 사용, 캔버스와 물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역동적이다. 캔버스 크기가 수 백호에서 수 천호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거대한 캔버스를 양손으로 잡고 캔버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색물이 스스로 흐르는 가운데 천연의 그림을 그리는 형식을 취한다. 이는 독창적인 채성필 고유의 화법으로써 작가로서 그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특장(特長)임에 틀림없다. 채성필의 이번 초대전은 이러한 화법이 반영된 주목되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