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에서 자연의 순환과 명상을 찾아낸 작가
이배(LEE Bae 1956 - )
이배(본명 이영배)는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90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타향살이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구하기 쉬웠던 바비큐용 숯을 작업 재료로 선택한 것은 그의 예술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는 숯이라는 유기적 물질을 자신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매체로 발전시키며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에 초대되며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2001년 제1회 하종현미술상 수상과 2018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Chevalier) 수훈으로 거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2023년 뉴욕 록펠러 센터 채플린 플라자 대형 조형물 설치,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 개인전, 2026년 뮤지엄산 대규모 전시 등을 이어가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드높였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경매와 아트페어에서도 급부상하며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섰다.


이배의 예술에서 숯은 단순한 검은색 안료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나무가 뜨거운 불을 통과하고 남은 잔해인 숯을 생명과 소멸, 생성과 재생의 에너지를 품은 고유한 물질로 바라본다. 대표 연작인 <불로부터(Issu du Feu)>에서는 숯 조각을 잘라 캔버스에 타일처럼 붙인 뒤 다듬고 광택을 내어 숯 고유의 결과 깊이, 빛을 끌어낸다. 숯가루와 아크릴 미디엄을 결합한 <무제(Landscape)> 연작을 통해서는 숯을 평면 회화적 표면으로 확장했으며, <붓질(Brushstroke)> 연작에서는 단 한 번의 획에 집중하는 서예적 신체성과 순간의 에너지를 밀도 높게 담아낸다. 나아가 대형 숯을 활용한 입체 설치 작업을 통해 공간과 물질의 유기적 관계를 폭넓게 탐구한다.

미술계는 이배를 단색화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로 평가한다. 그의 작품은 숯의 깊은 검은빛을 동양의 '먹'과 '여백의 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서양 추상 회화의 조형성과 다리 놓는다. 숯을 자르고, 다듬고, 쌓고, 힘차게 붓을 휘두르는 신체적 행위는 작품에 강력한 물질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결국 이배에게 숯은 불에 의해 소멸한 과거의 흔적이자 새로운 생명과 시간을 품어내는 역설적 매개체다. 작가는 이러한 숯의 본질을 통해 자연의 영원한 순환과 인간의 삶, 생성과 소멸의 섭리를 다루며, 전통적인 동양의 정신성을 현대 추상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배, 2026 뮤지엄산 기자간담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