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 사물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윤진섭 | 미술평론가
01.
두 달 전, 청주에 사는 작가 이종관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거기, 한 건물의 반지하 작업실을 꽉 채운 사물들의 웅성거림을!
사물에 관한 한, 나름대로의 이력을 지닌 내게 사물들이 내는 그 웅성거림이 전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방언처럼 다가왔던 것. 나는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작업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십수 년간 쌓였을 법한 갖가지 사물들이 빚어낸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 자체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 풍경과 설치미술의 한 유형이 거기 그렇게 장엄하게!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두 달 전, 청주에 사는 작가 이종관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거기, 한 건물의 반지하 작업실을 꽉 채운 사물들의 웅성거림을!
사물에 관한 한, 나름대로의 이력을 지닌 내게 사물들이 내는 그 웅성거림이 전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방언처럼 다가왔던 것. 나는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작업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십수 년간 쌓였을 법한 갖가지 사물들이 빚어낸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 자체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 풍경과 설치미술의 한 유형이 거기 그렇게 장엄하게!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백의 시간 Time of White Garments_160xØ220cm_각종 흰색 헌 의류, 가위질_202602.
그러면 그 수많은 사물들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세계 여러 나라에서다. 작가 이종관이 국내는 물론 직접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모은 것들이다. 이것을 가리켜 뭐라 부를 수 있을까? 사물공화국? 아니면 쓰레기 오케스트라? 목이 부러진 인형에서부터 밧줄, 유리병, 다양한 형태의 플라스틱 용기들, 머플러, 액자, 마네킹, 쿠션, 양파망, 장난감 자동차 등등에 이르기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사물들은 그러나 작가 나름대로의 분류법에 의해 어떤 질서를 지니고 있었다. 세계 곳곳의 산지에서 구한 사물들이 담긴 무수한 대형 박스들과 함께 그것은 작업을 위한 원천이었다. 단어의 생성이 일정한 음소들의 조합이듯이, 전시가 벌어지면 차출당할 운명에 처한 사물들이 거기에 모여 있는 것이다. 세상의 운명은 오직 신만이 알 듯, 작업실에 모인 사물의 운명은 작가 이종관만이 알 뿐이다. 작가는 수많은 사물들의 이력을 머릿속에 꿰고 있다. 저 목이 잘린 인형은 아프리카의 한 도시 골목에서 주운 것인데, 어느 어느 전시에 출품했었지 등등 사물의 이력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요즘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물격론’의 기본 요소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한국 나이처럼, 사물은 습득한 날로부터 한 살이다. 그렇게 해서 ‘사물의 생애사’가 구성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작품의 역사이기도 하다.
03.
그렇다면 이종관의 이 독특한 예술형식은 어떤 연유로 탄생하게 된 것일까? 다음과 같은 작가 노트가 그 발생 배경을 말해준다.
“여러 해 전 중미 과테말라의 아티틀란에서 석 달 머문 적이 있다. 화산 분화로 생긴 커다란 담수호인데 간간이 호수 주변으로 밀려든 쓰레기(스페인어로 ‘바수라’)로 작품을 만들곤 했던 것이 표현의 단초다. 장기 여행자로 그림 그릴 재료와 도구, 작업장이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주변에서 수집한 쓰레기가 물감이 된 셈이다.”
이종관의 사물 오브제 작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가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에 사물은 물감의 대용이었다. 흰색과 검정을 색으로 인정한다면, 동식물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색을 가지고 있다. 이종관이 수많은 습득된 사물들(objet trouvé)로 산포된 설치작업을 벌일 때 시각적 장관을 연출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이 시각적 장엄함이나 숭고한 느낌을 받는 가장 큰 요인이 거대함에 있다고 할 때, 이종관의 설치작업이 지닌 거대한 스케일이 바로 여기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물들이 모두 작가 이종관이 발품을 팔아 하나하나 수집한 노동과 즐거움, 유희의 결과라니 놀랍지 않은가? 필시 이종관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여행 중에 사물 하나하나를 만나고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물들이 존재하는데,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다 수집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우선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와 사물 간에 궁합이 맞아야 하는 원리이다. 내가 2019년에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로컬 프로젝트 포룸(Four Rooms)]전에서 이종관의 설치작업 <줍/픽(Joup/Pick)>을 봤을 때, 나는 우선 장대한 스케일과 5천 4백여 점에 달하는 오브제의 숫자에 놀랐다. 저 많은 것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모은 것들이라니!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물들이 작가가 지점토로 직접 빚은 다양한 형태의 흰색 받침대 위에 일일이 ‘모셔졌다’는 사실이다. 전시장 바닥에 줄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산포된 수천 개의 사물들은 마치 사과, 밤, 대추 등등의 제수용품이 목기 받침대 위에 ‘모셔지듯이’ 존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전에 나는 얼책(facebook)에 물격론을 언급하면서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사물에게도 물격이 있다”고 쓴 바 있는데, 이종관의 이 사물 존중의 사유방식은 쓰레기 대란으로 인해 환경오염 등 각종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인류세(anthropocene)의 시대를 맞이하여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혼의 물결 Wave of the Soul_350x400x280cm_세계 여러나라 폐 의류, 찢고 자르고 이음_2025~2026
04.
이종관이 이 스케일 큰 작업을 수행하면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묶으면 책 몇 권도 너끈할 것이다. “중미의 어느 인적 없는 폐광산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강도한테 칼침을 맞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일화 등등 폐품의 수집 작업은 크고 작은 위험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아프리카의 시장에서 눈여겨본 여성용 스카프들을 모은 <영혼의 폭포>(2025)는 총길이 8.8킬로미터의 설치작업인데, 여기에는 560개의 스카프가 소요되었다. 이처럼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 또는 유목민(nomad)으로서 이종관이 기울이는 사물에의 관심은 애초에 그것이 물감의 대용품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젠 어엿한 그 자신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자리 잡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종관의 독자적인 오브제 작업은 여러 나라의 풍습과 사회, 제도, 풍물, 사물 등에 대한 치밀한 관찰로부터 나온다. <영혼의 폭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아프리카로 보내지는 폐의류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것이며, <울림>(460×460cm, 2024-5)은 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차(짜이)를 담는 흙으로 만든 3,176개의 작은 잔들을 모아 원형으로 질서 있게 배열한 설치작품이다. 그중에서 유독 시선을 끈 작업은 <구명(Lifesaving)>(90×160cm)인데 이 작품은 운송 중에 깨지거나 상처 난 작은 토기 찻잔 쿨하르를 주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흔히 버려지는 이 일회용 테라코타 찻잔이 이종관에 의해 작품으로 재탄생됨으로써 새 생명을 부여받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탈선 Deviation_92×190×88.5cm_껍질 벗긴 소파, 양파망, 손바느질_2025~202605.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세상을 떠돌다 하직하듯이, 세상에 태어난 그 어떤 사물도 세상을 떠나야 할 날이 온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운명은 동식물이나 사물의 운명과도 같다.
그중에서 이종관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물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공산품이건 인간의 창조물이건 간에 사물은 태어나면서 독특한 나름의 이력을 갖게 된다. 가령 땅에서 채취된 철광석이 대장간에서 삽의 보습으로 태어나면서 시작하는 사물의 이력은 어찌 보면 인간세를 닮았다. 철광석이라는 재료로 태어나 인간에 의해 삽의 형태를 부여받고 노동의 지난한 삶을 살아가다 수명을 다해 폐기되는 삽의 운명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이종관의 서사는 이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수많은 사물의 이야기를 통해 사물들이 들려주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에 경청할 것을 관객에게 나직이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