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마어 엘거 Dietmar ELGER ⓒ photo Oliver KILLING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태어난 드레스덴시의 알베르티눔미술관(SKD) 산하에 200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이하 GRA)를 방문했다. 사진 12,000점, 언론자료 12,000점, 미공개 문서 및 서신 500점을 비롯하여, 리히터와 관련된 단행본, 도록, 초청장, 포스터, 논문, 영상 등의 자료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ARKO창작산실 리서치 일환으로 《20 Years of the Gerhard Richter Archive》전(2025.12.13-2026.5.25)을 방문한 후, 출범 준비부터 현재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는 디트마어 엘거 디렉터와 인터뷰를 나눴다. 

Q. GRA는 매우 특별한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계속 새로운 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기존 작품에 대한 정보와 자료도 새롭게 확인되거나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A.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히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갤러리, 박물관, 개인 컬렉션, 경매 회사 등 어디서 오는 정보든, 당장은 사소해 보여도 빠짐없이 기록해두려 한다. 미래 세대의 연구자나 큐레이터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와 함께 일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여 요청도 대체로 수월하게 처리된다. 반면 까다로운 부분은 개인 정보 보호 문제다. 아카이브에 있는 문서 중에는 리히터 본인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이 언급된 것들도 많은데, 그런 경우 해당 인물의 동의 없이 외부에 전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Q. 살아있는 작가를 위한 아카이브의 가장 큰 특징을 꼽아 본다면?
A.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직접 소통하고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핵심이었다. 아카이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도, 그동안의 모든 프로젝트에서도 그 점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새롭게 완성된 작품 그룹을 처음으로 공개 발표하는 자리를 여러 차례 마련해왔고, 그 덕에 많은 전시를 직접 개최할 수 있었다.

Q. 그 동안 선보인 수 많은 GRA 전시들은 소장자료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나? 
A.
아카이브의 전시는 -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많은 경우 이런 아카이브적 성격을 띠고, 수집된 자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전시들도 있다. 예를 들어 개인 컬렉션에 소장된 리히터의 자화상 100점을 선보인 적도 있고, 스튜디오에서 막 완성된 신작들의 첫 공개 발표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비르케나우》 연작도 그렇게 처음 세상에 나왔다.



Gerhard Richter Catalogue Raisonne, 6 Volumes



Q. 개인 소장가나 갤러리, 출판사 등 외부로부터 적극적으로 확보한 자료들이 있었나? 
A.
스튜디오 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확보했다. 기증으로 받은 것도 있지만 직접 구입한 경우도 많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로는, 리히터가 1962년부터 1964년 사이에 동독의 두 친구에게 보낸 방대한 초기 편지들, 경매에서 낙찰받은 리히터의 책 《코믹 스트립》, 그리고 1966년 하노버 갤러리h에서 열린 리히터와 폴케의 공동 전시 관련 자료들이 있다. 우리는 확보할 수 있는 자료라면 놓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너무 많이 모으는 것이 너무 적게 모으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Q. 지난 20년 GRA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A.
《폴케/리히터》 전시와 그 바탕이 된 자료들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원래 전시를 담당했던 갤러리스트와 연결이 되어 자료를 직접 구입할 수 있었고, 이후 추가 자료도 경매를 통해 확보했다. 당시 카탈로그를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리히터의 사진 네거티브 아카이브에서 발견되었다.

Q. 최근 아카이브 분야에는 디지털 원본(Born-digital) 기록을 어떻게 수집하고 장기적으로 보존할 것인지가 자료 수집과 관리의 새로운 주요과제다. 
A.
리히터는 여전히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작업하고 소통하는 작가다. 그렇더라도 디지털 서신과 사진은 스튜디오와 아카이브 모두에서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기록해왔다. 정작 어려운 문제는 소셜 미디어다. 특히 반공개적인 영역에서 리히터에 대한 언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매일 쏟아지는 게시물과 댓글, 스토리를 일일이 수집하는 것은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인터넷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 부분에서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밖에 없다.


《20 Years of the Gerhard Richter Archive》, 2025 ⓒ photo David PINZER


Q. GRA의 전시, 출판, 심포지엄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서로 연결된 연구 과정처럼 보인다. 
A.
아카이브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카탈로그 레조네를 위해 수집한 자료가 나중에 리히터의 작업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바로 그런 순간에 새 프로젝트의 씨앗이 싹튼다. 때로는 작가 본인이 먼저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하고, 우리가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기도 한다. 전시는 보통 이 과정의 끝에 서 있고, 동반 출판물은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학문적 기록으로 남겨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대중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느냐, 그리고 공적 자금을 받는 기관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정당화하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이는 전시, 출판, 심포지엄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자료를 열어주는 것, 그리고 소장 작품을 국제 전시에 활발하게 대여하는 것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Q. GRA만의 고유성을 리히터의 “이미지에 대한 사고방식”과도 연결지어 볼 수 있을까?
A.
GRA에서 일하는 가장 큰 매력은, 오직 한 작가만을 연구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토록 끊임없이 창조하는 정신을 아카이브하려면, 수집과 기록도 그만큼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리히터가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품었던 광범위한 관심과 창조적 에너지를 아카이브 안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리 감각과 함께 그 세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리히터의 추상화처럼, 우연이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했다.



- 디트마어 엘거(Dietmar ELGER, 1958- )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 디렉터. 2011 년부터 2026년까지 총 7권으로 출간된 『Ca-talogue Raisonné (Werkverzeichnis)』 총괄. 하노버 슈프렝겔 미술관(Sprengel Museum) 큐레이터 역임. 

- 호경윤(1981- ) B파운데이션 대표. ARKO 시각예술 창작산실 <김수자 아카이브: 기록의 보따리를 풀다>의 총괄 기획자.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