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박물관협회(이하 협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76년 ‘한국민중박물관협회’로 문을 연 이래 1991년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로 설립인가를 거치며 달려온 반세기다. 이 노정에서 협회는 국·공립과 사립 및 대학박물관을 아우르는 거버넌스로 위상을 키웠고 정부와 현장을 잇는 공식적인 민관협력 채널로 대표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전체 등록관 1,208개소의 약 64%에 달하는 770개관이 협회 소속의 회원관이다.

협회가 지난 50년 동안 거둔 성과는 전방위적이다. 그 으뜸은 박물관의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을 주도한 것이다. 일국의 박물관 정책이 법제에 기반하여 추진되는 것이라면, 협회가 걸어온 50년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과 예술을 보존·진흥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대응과 정립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 성과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미진흥법)과 이 법에 기반한 ‘학예사 자격제도’일 것이다.





1991년에 제정되어 1992년부터 시행된 박미진흥법은 우리나라 박물관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84년 제정되었던 「박물관법」은 진흥보다는 규제 중심적이었고 적용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협회는 대학박물관협회 등 유관 단체들과 공청회를 주도하고 법 개정 청원을 전개하며, 국·공립과 사립, 대학박물관을 모두 포괄하는 전면 개정을 실현했다. 이후에도 협회는 박미진흥법이 수십 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박물관 등록제도 정착, 세제 혜택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 공립박물관 건립 타당성 사전 평가제 도입, 디지털 전환 및 포용성 강화 등을 둘러싼 최근의 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협회는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서 그 중심에 있었다.

한편, 2000년에 도입된 ‘학예사 자격제도’는 박물관 전문성 강화를 위해 협회가 주도한 업적이다. 박물관의 전문성은 결국 사람의 역량에서 나온다. 협회는 학예사 자격제도의 도입과 안착을 견인하며, 박물관 전문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직업적 안정성을 부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박미진흥법을 근거로 학예사·교육사·예비인력 지원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을 확보함으로써, 전국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제도적 생존 인프라를 구축했다.

빛이 있는데 어찌 그림자가 없겠는가. 협회가 걸어온 지난 50년이 양적 팽창과 제도적 틀 확립의 시간이었다면, 급변하는 시대의 지속 가능한 정책 설계도가 되기에 부족한 그늘이 산재해 있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와 우리나라 정부가 단계적으로 소통과 포용성 그리고 지속가능성, 지역사회 참여 등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동안, 법제 하의 현장은 예정된 혼란이 확산되고 있었다. 박미진흥법은 법명에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어 융복합 전시나 사회적 역할 확장에 행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학예사 자격증 제도 역시 현장과 괴리된 채, 학예사 한 명이 연구·전시·교육·유물관리에서 행정업무까지 전담하는 다목적 노동 구조에 가두어 놓았다. 1년 단위의 계약직과 저임금 구조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형성이나 연구를 수행할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박미진흥법과 학예사 자격제도는 우리나라 박물관의 양적 증가와 진흥에 기여해 온 법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부작용 역시 심각하다. 최근 국내외 박물관계가 지향하는 사회적 책임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고, 연결과 포용의 문화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입법 운동이 필요하다. 박물관·미술관으로 이분화된 현행 법체계를 글로벌 스텐다드인 뮤지엄 개념으로 통합하여, 장르간 융·복합적 전시와 다원적 활동이 행정적 제약 없이 이루어지도록 정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과학관을 비롯해 파편화되어 있는 박물관의 관할 부처를 초월한 국가 통합기구와 「박물관기본법 」 제정을 위해 박물관인들의 혜안을 모아야 한다. 지난 8월 14일 협회와 이정문 의원실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 박물관·미술관 정책 세미나-한국박물관협회 50년 회고와 미래전략’은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