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론


대립하는 것들의 화해와 공존



김성호(미술평론가)

 



 

작가 이주영은 자신의 회화 작업을 통해서 대립하는 것들의 화해와 공존을 주선한다. 그녀의 그림에는 이항대립의 맞섬을 중재하고 화해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장치되어 있다. 구상/추상, 입체/평면, 볼록/오목과 같은 대립적 '형식' 안에 담고 있는 존재/부재, 삶/죽음, 자연/인공과 같은 대립적 '내용'이 그것이다. 주지하듯이 그것은 우리의 일상 안에 뒤섞인 채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삶의 지혜를 통해서 비로소 분리되고 추출된다.

 



투과체 혹은 액체로서의 접점(接點) : 비대립적 형식으로 대립하는 회화

이주영의 회화에서 이항대립적 요소들의 분리와 추출의 기점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벽'이다. '벽'은 그녀의 회화에서 대개 좌측과 우측에 상이한 화면들을 배치하고 서로 만나게 하는 '중간지대로서의 접점'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시각에 그 두께는 매우 납작하거나 얇은 것이지만, 실상 매우 두터운 것이다. 이러한 두터움은 우리의 눈에 쉬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비유적으로 언급하면, 견고한 벽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그물망의 층(層)들로, 혹은 양자에 개입하고 그것을 매개하는 투명한 유동체의 덩어리로 존재한다. 즉 투과체 혹은 일종의 액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양자를 분리하고 병존하게 하는 찬합(饌盒) 내부의 막힌 벽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를 왕래하게 만드는 구멍 뚫린 다기(茶器)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거나 아예 고체이기보다는 액체의 상태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그녀의 회화에서, 이러한 매개의 접점은 비유적으로는 매우 두터운 것이지만, 실제의 이미지는 화면을 둘로 가르고 있는 얇은 선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것은 한쪽에 탈색된 화면이 있다면 반대편에 색을 지닌 화면이 마주하고 있는 접점에서 형성되는 얇은 선과 같은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선이 아니지만 선처럼 드러나는 대립된 경계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계면 좌우로 존재하는 이항대립적 요소는 완벽한 대립이 아니다.예를 들어, 한쪽이 색의 결핍과 마티에르의 충만을 드러낸다면, 한쪽은 색의 충만과 마티에르의 결핍을 드러내는 식으로 '결핍/충만'의 대립항을 서로가 나누어 갖는다.한쪽이 잉여/결핍의 것이라면, 한쪽은 결핍/잉여의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분할된 화면의 크기 또한 동일하지 않다. 즉 그녀의 작품은 '비대립적 형식으로 대립하는 무엇'이 된다. 물론 그것은 이항대립적 화면을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균형과 조화의 관계로 설정하려는 작가의 의도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 50×50. 2011년. Mixed media





볼록의 당초 문양 : 월경(越境)하는 자연

이주영의 회화에서 이항대립적 요소의 조화와 공존은 상호침투적인 '접점'과 '비대립적 형식으로 대립'하는 화면 구성 외에 또 다른 특별한 존재가 주도하여 성취된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발원하는 일련의 패턴(pattern)으로부터 기인한다. 패턴이란 일정한 형태나 양식이 연쇄되는 이미지로 우리에겐 '무늬' 혹은 '문양(文樣)'이란 말로 익숙한 존재이다. 그녀에게 이 패턴은 자연으로부터 온 식물 이미지, 일테면 연화(蓮花), 모란, 포도, 국화, 인동(忍冬), 보상(寶相)과 같은 '당초 문양'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지극히 동양적인 패턴 외에도 그녀는 로터스(lotus), 아칸서스(acanthus), 팔메트(palmette)와 같은 서구 문명으로부터 기원하는 당초 문양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회화에 나타난 자연관을 서구, 비서구의 통합적 인식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그녀가 좌우의 대립항들을 비대립적으로 만나게 하는 조형언어와 동일한 방식으로서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의 몸체 안에 통합하려는 노력이 된다.

 

게다가 이 자연의 패턴은 접점의 공간을 넘어서면서 생장을 지속함으로써 자유롭게 월경(越境)하는 자연의 본성을 담아낸다. 자연(自然)이란 인공의 힘이 닿아있지 않은'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지속하는 존재이자, 생성, 소멸, 치유를 스스로 행하는 운동체적 존재인 것이다. 여기에는 온화한 '순환적 질서의 세계' 외에도 자연이 견지하고 있는 역동적인 '탈주의 세계'가 함께 자리한다.

 

그녀의 작품〈공존(共存,coexistence〉(160×80. 2013년)을 보자. 은빛 펄이 들어간 하얀색의 바탕 위에 요철(凹凸)의 형상으로 올라선 당초 문양의 드로잉은 스멀스멀 경계면을 점유하고 월경하면서, 푸른색의 공간 너머로 이주한다. 그것은 푸른색의 2011년, 2012년 작품 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또한 우리는 붉은색의 2011년 작품〈공존(共存,coexistence), 50×50cm〉에서도 이러한 접점으로부터 월경하는 당초 문양의 모습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두꺼운 스펀지에 당초 문양을 인두로 지져서 파내 만든 '오목'의 판본은 캔버스 위에 올린 물감과 미디엄을 찍어 눌러 '볼록'의 당초 문양을 만들어낸다. 이주영의 작품에서 관건은 이 오목(凹)의 판본이 만든 볼록(凸)의 드로잉이 죽어 있는 '패턴'에 생기와 에너지를 준다는 마술과 같은 활유법(活喩法)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튜브로부터 밀려나오는 섬유용 물감으로 접점 너머에 그려진 두께 있는 '볼록(凸)'의 드로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볼록의 드로잉은 납작한 평면의 공간에서 성장이 멈춘 '패턴(樣)'을, 생장하는'자연체'로 전환시키기에 족한 것이라 하겠다.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 100×50. 2012년.Mixed media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 100×50. 2012년.Mixed media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 50×50. 2011년. Mixed media

 




패턴을 해체하는 빛의 세계 

작가 이주영이 구축하는 패턴의 세계는 자연 이미지로부터 추출된 정수(精髓)로서의 무엇이다. 자연이 추상적으로 변형되고, 반복적 효과를 거듭하면서 이르게 된 패턴이란 소위 '집단적 가치 감정의 상징형'이다. 그녀가 자신의 논문에서 인용하고 있듯이 “시각적 재현의 힘이 일차적으로는 대상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에서 나오고, 이차적으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 특성들이 암시하는 지각에서 나온다”고 한 아른하임(R. Arnheim)의 주장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즉 패턴이란 유기적 자연 그 자체이기보다는 인간에 의해 해석의 눈을 거쳐 인공화된 자연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생동력을 자체 내에 지니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암시이자 추상의 세계이다. 자연의 패턴은 그런 면에서 문화인류적 관심, 정신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자연/인간(혹은 인공) 사이의 대립을 와해시키고 서로를 다시 화해하게 하는 그녀의 작업은 매우 이지적인 정신적 산물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즉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이것에 체험적인 자연/인간의 공존이 부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 50×50. 2011년. Mixed media


이주영.공존(共存,coexistence).60×120. 2014년. Mixed media

최근에, 작가는 체험적인 차원의 자연/인공의 공존을 위해, 표현주의이면서도 현대적 첨단의 조형언어를 함께 도입한다. 그것은 반투명의 아크릴판에 회화의 물감층을 올리고 아크릴판 뒷면에는 LED 조명을 부착, 활용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적 언어의 접점과 더불어 양자간 공유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반투명의 아크릴판 위에 직접 물감을 올리고, 한편으로는 이 뒷면의 부분에 빛이 투과하지 않는 시트를 붙여 전면의 이미지 및 색감을 부분 보존함으로써 화이트 펄이 발하는 색채로 화면의 증폭감을 유도하는 방식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투명과 불투명의 공간을 공존시킬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전통적 회화 방식에 디지털 재료를 추가해서 빛과 반응하는 예측불가능한 효과를 다양하게 실험한다. 그런 면에서 이주영의 최근 회화는 이항대립의 화해를 시도한 패턴이라는 근대적이고 이지적 산물을 현대적인 인공의 LED 빛으로 해체하고 재구축함으로써 끊임없이 오늘도 다시(re) 하기를 실험하는 '시각적 운동체'로 정의되는 것이다. ●
 


출전/

김성호,「대립하는 것들의 화해와 공존」, (이주영 작가론),『미술과비평』, 2014 봄호, pp.( ~ )